음식에 빠진 드라마·영화·예능… 더 맛있네

요즘 대중문화 콘텐츠의 중요한 키워드 중 하나는 '음식·요리'이다. 이전에는 드라마나 영화 같은 극(劇) 부문에서 주로 등장하던 것이 지난해부터는 예능과 교양 프로그램들로까지 영역이 확장됐다.

◇영화·드라마·예능 장르 불문

드라마 '백년의 유산'은 100년 전통의 국수공장집 손녀가 전통의 맛을 지키고 발전시키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드라마 '내 사랑 나비부인'은 주인공들의 생활공간으로 전통 된장과 고추장을 담가 파는 토속 맛집을 그리고 있다. 지난해 방영된 '고봉실 아줌마 구하기' '발효가족' '불후의 명작' 같은 종편채널 드라마들도 음식이 드라마 전개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예능 부문에선 '해피투게더'가 지난해 6월부터 출연자의 사연이 담긴 음식을 소개하고 맛보는 '야간 매점' 코너를 선보이고 있다. '개그콘서트' 중 '생활의 발견' 코너도 음식점에서 에피소드들이 펼쳐진다. 교양 프로그램인 TV조선의 책 토크쇼 '북잇수다'엔 문학 속 요리를 실제 맛보는 '맛으로 읽는 책' 코너가 있다.

영화는 지난해 '하와이언 레시피' '스시장인: 지로의 꿈' '엘 불리: 요리는 진행 중' 등 요리 소재 작품들이 잇달아 개봉했다. 뮤지컬로는 상처를 가진 사람들이 음식을 통해 희망을 얻는다는 내용의 '심야식당'이 공연되고 있다.

콘텐츠들이 음식 또는 음식 만드는 공간을 활용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음식과 음식 만드는 사람들을 극 중심에 끌어들인 경우(백년의 유산)가 있는가 하면 극 전개의 주요 배경으로 설정하는 경우(나비부인)도 있다. '하와이언 레시피' 속 할머니의 주방, '넝쿨째 굴러온 당신'의 오래된 팥빵집, '드라마의 제왕' 속 고갈비집 같은 장소는 갈등을 풀고 희망을 다지는 '치유의 공간'으로 활용된 예다.

◇세대를 아우르는 극적인 소재

그렇다면 왜 대중문화 콘텐츠들은 음식과 맛 공간에 푹 빠지게 된 걸까? 제작진과 전문가들은 "이야기를 풀고 화면을 만드는 데 음식만큼 극적이고 적합한 소재가 없는 데다 최근엔 '힐링 기능'까지 각광받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드라마 '신들의 만찬'을 쓴 조은정 작가는 "의식주 가운데 사람들에게 가장 가깝게 느껴지면서 많은 세대를 한 번에 아우를 수 있는 소재는 단연 식(食)"이라고 했다. '제빵왕 김탁구' CP였던 정해룡 KBS미디어 드라마본부장은 "생활수준이 높아지면서 음식은 단순히 끼니를 때우는 게 아닌, 먹으면서 기뻐하고 즐거워할 수 있는 삶의 요인으로 격상되며 중요 소재가 됐다"고 했다. 영화사 진진 김난숙 대표는 "요리는 자기와 가족·친구를 위한 노동이고 불을 쓰는 육체노동이기 때문에, 정신노동에 익숙한 사람들의 스트레스를 풀어줘 드라마·영화의 소재로 애용된다"고 했다.

"음식 소재 작품은 실패 가능성이 작고 제작비 조달이 쉽다"는 현실적인 이유도 있다. 실제 '국희'(1999년) '대장금'(2003년) '찬란한 유산'(2009년) '파스타'(2010년) '신들의 만찬'(2012년) 등 성공한 음식 드라마를 꼽는 건 어렵지 않다. 이 중 특정 음식을 전면에 부각시킨 '찬란한 유산'(설렁탕) '제빵왕 김탁구'(빵) 등은 해당 제품 기업에서 제작을 지원하기도 했다.

대중문화 콘텐츠의 음식·요리 사랑은 상당 기간 계속되리라는 전망이 많다. "전통·현대와 동서양이 공존하는 퓨전 시대에 음식과 요리만큼 그 흐름을 반영하기 좋은 소재도 드문 데다"(조은정 작가) "소재 전문화 흐름까지 맞물려 특정 음식을 깊이 있게 다룬 작품들이 계속 나올 것"(정해룡 본부장)이라는 관측이다.

부작용에 대한 지적도 나온다. 드라마 평론가 윤석진 충남대 국문과 교수는 "최근 음식 소재 콘텐츠들을 보면 과도한 간접광고(PPL), 출연진의 중복, 비슷비슷한 설정 등 문제가 적지 않다"며 "이 같은 반복 생산이 지속되면 결국 소비자들이 질려 외면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