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진출 한국 기업이 현지 수출의 20% 담당

우기(雨期)를 맞아 온종일 비가 내리던 지난 17일(현지 시각) 베트남 수도 하노이. 관문인 노이바이 공항을 빠져나와 탕롱대교에 들어서자 다리 입구에 베트남과 일본 국기가 나란히 그려진 안내문이 보였다.

기존 공항 근처에 새로 짓고 있는 제2공항 공사장에도 베트남과 일본 국기가 나란히 그려진 안내판이 서 있었다. 일본 정부가 제공한 차관(借款)으로 다리를 세웠고 공항을 건설하고 있다는 의미다. 탕롱대교 주변에는 파나소닉·야마하·고마쓰 등 일본 기업의 현지 공장이 줄줄이 늘어서 있다. 차관 제공의 대가로 일본 기업에 제공된 노이바이 공단이었다.

하지만 탕롱대교는 요즘 '삼성대교'로 불린다. 다리 위에 50여m 간격으로 세워진 가로등마다 삼성전자 휴대전화 광고판이 걸려 있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가 건설 자금을 댔고 일본 기업이 다리를 둘러싸고 있지만, 정작 다리의 얼굴 역할은 한국 기업이 하고 있는 셈이다.

현재 베트남 경제 상황도 이와 비슷하다. 일본 기업은 지난해 베트남에 공장 신설을 위해 수십억달러를 쏟아부었다. 한국 기업보다 10배 가까이 많은 돈을 투자했지만, 정작 베트남 경제 지형을 바꾸는 것은 한국 기업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베트남 진출 삼성전자 120억달러 수출

베트남은 1992년 이후 처음으로 지난해 2억8000만달러 무역 흑자를 기록했다. 제조업 기반이 부족해 매년 100억달러 이상 무역 적자를 기록하던 나라가 20년 만에 규모는 적지만 무역 흑자국으로 거듭난 것이다. 베트남이 흑자국이 될 수 있었던 원동력은 삼성전자를 비롯한 한국 기업들의 역할이 컸다.

하노이에서 자동차를 타고 북쪽으로 1시간 정도를 달리자 박닝성 옌퐁공단이 나왔다. 이곳은 말 그대로 '삼성전자공단'으로 완전히 자리 잡았다. 주변에 별다른 시설이 없어 허허벌판 같던 2009년 하반기 본격 가동에 들어간 삼성전자 공장이 박닝성은 물론 베트남 경제 지형을 바꿔놓고 있기 때문이다.

이 공장은 지난해 120억달러어치의 휴대전화를 전 세계로 수출했다. 베트남 전체 수출액(1146억달러)의 10%를 넘는 것. 지난해 휴대전화 수출 대수는 1억2000만대. 전 세계 삼성전자 휴대전화 판매량(3억8000만대)의 30%를 넘는다. 삼성전자는 박닝공장 가동 3년여 만에 베트남전력공사·베트남석유공사 등을 제치고 베트남 최대 매출 기업으로 우뚝 섰다.

◇한국 기업들 수출 비중 20%

삼성전자 박닝공장은 요즘 매주 직원 1000여명을 새로 채용한다. 급증하는 생산량을 맞추기 위한 인력 수급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채용전담팀은 베트남 각지를 돌며 직원을 뽑는 데 안간힘을 쓰고 있다. 박닝공장 근무 인력은 지난해 말 기준으로 2만6000여명. 올해 연말까지는 4만4000명 이상으로 2만명쯤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전자가 휴대전화 생산량을 늘리면서 글로벌 항공사들도 특수를 누리고 있다. 삼성전자가 노이바이 공항을 통해 내보내는 수출 물량은 월 3500t 안팎에 달한다. 보잉 747 대형 화물기 1대에 실을 수 있는 화물량은 100t. 매일 1대씩 보잉 747 화물기를 빌리더라도 모자란다.

항공사들은 삼성전자 수출 물량을 잡기 위해 노이바이 화물기 취항을 늘리고 있다. 에미레이트항공은 지난해 11월부터 대형 화물기를 주 2회 정기 운항하고 있다. 싱가포르항공도 지난해 12월 화물기를 증편했다. 현지 항공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 화물 물량이 2009년 이후 매년 50% 가까이 늘고 있다"면서 "삼성전자 물량을 잡기 위해 각국 항공사가 치열하게 경쟁 중"이라고 말했다.

현재 베트남에 진출한 국내 기업은 삼성전자·LG전자·포스코·효성·두산중공업 등 3000여개에 육박한다. 삼성전자를 제외한 나머지 기업도 매년 100억달러 이상을 베트남에서 다른 나라로 수출한다. 현지에 진출한 한국 기업이 베트남 전체 수출의 20%를 도맡고 있다. 황도 베트남 투자청장은 "일본 기업을 비롯한 해외 기업이 '왜 한국 기업에만 특혜를 주느냐'고 불평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베트남 국민은 '롤 모델'인 한국 기업의 과감한 투자와 성공을 높이 평가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