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사와 손잡은 전통시장, 금요일마다 북적

"자, 오늘은 '금요장터'가 열리는 날입니다. 시장 입구에서 나눠준 복권에 당첨되신 분은 현금처럼 아무 데서나 쓰시면 됩니다. 뒷면엔 이름과 전화번호를 꼭 써주세요."

지난 18일 서울 광진구 중곡동의 중곡제일시장. 천장에 달린 스피커에서 안내방송이 흘러나오자 장바구니를 손에 든 아줌마들이 동전으로 복권을 긁기 시작했다. 상인들도 구경에 나섰다. "워메, 이 아줌마 5000원짜리 당첨됐네." "딴 데 가지 말고 그냥 여기서 귤 사요. 많이 줄게." 복권에 당첨된 한명자(71·주부)씨가 함박웃음을 지으며 볼펜으로 복권에 이름과 휴대전화 번호를 적었다.

140여개 점포로 구성된 중곡제일시장은 1.5㎞ 앞에 백화점과 대형마트가 들어서면서 손님이 줄었다. 하지만 금요일 낮인데도 시장엔 생기가 돌았다. 한 달 전부터 SK텔레콤과 함께 '금요장터'를 시작한 뒤 생긴 변화다. 매주 금요일이 되면 시장 상인들은 하나같이 오렌지색 앞치마를 두른 채 손님을 맞는다. 이날만큼은 가게마다 한 품목씩 할인해서 판다. 작년 9월 중곡시장과 '전통시장 살리기' 협약을 맺은 SK텔레콤도 매주 새로운 마케팅 기법을 시장에 적용한다.

이날 첫선을 보인 현금복권 역시 SK텔레콤과 중곡시장 상인들이 머리를 맞대고 만든 이벤트다. 박태신 중곡제일시장협동조합 이사장은 "복권으로 손님을 끌려는 것이 아니라 시장을 찾은 손님들의 이름과 연락처를 확보해 고객관리에 활용하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상인들은 SK텔레콤이 마련한 1000장의 현금쿠폰을 손님들에게 나눠줬다. 손님 1000명과 연결될 수 있는 '끈'이 생긴 셈이다.

상인들은 자체적으로 마련한 '동전 던지기' '중곡시장 퀴즈' 같은 이벤트도 열었다. 중장년 손님이 대부분이었지만 엄마 손잡고 따라온 어린이와 젊은 손님들도 호기심 어린 눈으로 기웃거렸다. 서진석 SK텔레콤 CSR(사회책임)팀장은 "일회성 지원에 그치기보단 시장이 장기적으로 자립할 수 있도록 돕는 데 주력하고 있다"고 했다.

SK텔레콤이 중곡제일시장과 손을 잡은 것은 작년 9월. 중곡시장은 2004년에 이미 상인협동조합을 설립했다. 변화에도 적극적이었다. 온누리상품권이 나오기 전에 국내 전통시장 최초로 자체 상품권을 만들어 팔았다. 2011년에는 '아리청정'이란 자체 브랜드를 만들 만큼 자립 의지도 강했다. SK텔레콤이 처음 시장과 접촉했을 때 상인들은 오히려 "대기업이 생색내려고 들어오는 것이라면 차라리 관두라"는 반응을 보였다.

SK텔레콤 직원들은 일주일에도 수차례씩 시장을 찾았다. 상인들과 머리를 맞대고 온라인 판매교육에서부터 고객 관리까지 SK가 가진 마케팅 노하우를 하나씩 공유하기 시작했다. 첫 효과는 중곡시장의 대표 상품 '아리청정 참기름'에서 나타났다. 온라인 마켓 '11번가'에 입점한 참기름의 월 판매량이 5개에서 300개로 치솟은 것. 상인들도 변화를 체감하기 시작했다. SK텔레콤 관계자는 "일시적인 지원보다는 상인들에게 '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주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SK텔레콤은 정보통신기술(ICT)을 시장 곳곳에 접목해 '스마트 시장' 만들기에도 나서고 있다. 젊은 고객을 끌기 위해 시장 전역에 무료 와이파이(무선인터넷)를 설치했다. 현금 결제를 선호했던 상인들에게 카드결제와 매장관리가 동시에 되는 단말기 '마이샵'을 지급했다. 이 기기가 있으면 시장 손님들의 휴대전화에 '신제품이 새로 나왔다'는 문자 메시지도 보낼 수 있다. 군산건어물을 운영하는 유기준(66)씨는 "아직 큰 성과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시장에 새 바람이 불면서 상인과 손님 모두 만족해한다"고 했다.

중곡시장의 꿈은 전국 무대다. 박태신 이사장은 "솔직히 대형마트에 한 달에 두 번 강제로 문 닫으라고 하는 게 말이 되느냐"면서 "우리 스스로 경쟁력을 갖춰 전국 각 시장과 '1시장 1대표품목'을 서로 교류하는 전국적인 시장 체인을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