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얘기 묻지 마라, 주제넘은 일엔 관심 없다"

안철수 전 대선 후보의 절친한 '친구'로, 지난 대선 내내 관심의 초점이었던 '시골의사' 박경철(49)씨.

2011년 9월 안철수 전 후보가 박원순 시장에게 후보를 양보한 후 눈물을 보였던 그는 그해 겨울 그리스로 떠났다. 그리곤 대선 기간 내내 얼굴을 비치지도, SNS 활동도 하지 않았다. "답사와 집필에만 집중한다"고 했다. 그가 1년여 만에 새 책 '문명의 배꼽, 그리스'(리더스북)를 들고 돌아왔다. 인문학적 그리스 여행기다. 여전히 정치에 대해선 선을 그었다. "주제넘은 일엔 관심을 갖지 않는다"고 했다. 인터뷰 조건도 '정치는 배제'였다. 안철수 전 후보에 대해선 "미국에 있지 않나? 연락 안 한다. 존경하고 좋아하는 친구가 가는 길을 지켜볼 뿐"이라고 했다.

의사, 투자전문가, 방송 진행자, 스타 강사로 활동하던 그가 그리스로 떠난 것은 대학생 때부터 간직해온 꿈 때문이다. 22일 만난 박씨는 "카잔차키스의 '예수 다시 십자가에 못 박히다'를 읽은 후부터 언젠가 그의 발자취를 따라 그리스 문명을 답사해보고 싶었다"고 했다. 1년여 동안 세 차례에 걸쳐 그리스 구석구석을 답사한 그는 1권에서 코린토스와 올림피아 그리고 스파르타 등을 샅샅이 훑어 보여준다. 신화와 역사가 지층처럼 쌓인 그리스의 과거와 현재 모습을 기록한 '박경철 그리스 기행'은 12권으로 나온다.

그는 답사를 통해 그리스 문명과 역사가 지금 우리에게 주는 숙제를 느꼈다고 했다. 그리고 그 답으로 '균형'의 중요성을 꼽았다. "올림피아에 아폴론상(像)이 있습니다. 좌우에선 싸움이 벌어졌는데 초연한 모습이죠. 이런 균형이 그리스 문명을 꽃피운 원동력입니다. 경쟁 자체가 나쁘진 않죠. 하지만 균형과 조화가 지금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그리스식 행복'도 얘기했다. 국립은행에서 구조조정당한 후 시골에서 장인 식당일을 거드는 50대 부부는 쉬는 시간에 식탁에 턱 괴고 앉아 10대들처럼 즐겁게 얘기했다. 걱정하는 박씨에게 그리스 부부는 "여기 와서 1년 만에 친구가 30명이 생겼다. 인생은 원래 행복한 것. 실직은 불운일 뿐"이라고 했다. 박씨는 "불운과 불행이 다르다는 그의 말에 머리가 띵했다"고 했다.

'청춘콘서트'로 전국의 청년들을 만났던 그는 대선 이후 2030세대의 좌절에 대해선 "원하는 바를 못 이뤘는데 좌절하는 건 당연하지 않나? '좌절하겠구나' 하고 이해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기성세대에 비해 지금 젊은이들에겐 공간이 너무 좁습니다. 전 이번에 '홍익인간' 뜻을 새롭게 되새겼습니다. 이미 땅따먹기 시대는 지났죠. 우리 젊은이들이 다양성과 적극성, 치열성을 갖고 세계를 무대로 못사는 나라를 일으키는 씨앗과 부싯돌이 되고, 잘사는 나라에선 좋은 점을 배워 우리에 응용할 수 있도록 포부를 심어야 합니다. 이제 국내에서 '스펙' 경쟁할 시대는 아닙니다."

그는 올해 화두로 '승화'를 꼽았다. "젊은이들에 대해 걱정이 많은데 그럴 필요 없다. 이해하고 기다려주면 승화의 과정을 거칠 것이다."

다음 주 카잔차키스의 길을 따라 이란을 방문할 예정인 그는 "앞으로 한 1년은 집필에만 집중할 생각"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