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서른 살에 귀촌해 올해로 서른여섯을 맞은 박영배 씨는 요즘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7년째 고향을 지키며 부모님 곁에 있을 수 있고, 사랑하는 아내와 두 아이에게 자연을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어렸을 때부터 좋아했던 분야를 사업화해 어느덧 살맛나는 일터를 가꾼 그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보자.
‘아이러브벅스’의 나비넥타이 아저씨
빨간 나비넥타이에 노란 운동화 차림으로 등장한 박영배 씨는 꿈을 찾기 위해 귀촌했노라 고백했다. 그가 찾은 꿈은 곤충체험학습장인 ‘아이러브벅스’다.
“제 차림이 좀 요란하죠? 남들이 보면 오버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이곳이 곤충체험학습장이기 때문에 나비넥타이를 꼭 맵니다. ‘아이러브벅스’라는 이름은 가족회의를 통해 결정됐어요.”
도시에서 수입차를 정비했던 그는 적성에 맞지 않는 직업으로 홍역을 앓았다. 답답한 도시를 벗어나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만 간절했다. 대학교까지 고향에서 다닌 탓에 농사가 얼마나 힘든지 직접 보고 자라 귀농 대신 귀촌을 결정한 찰라, IMF 때 접었던 부모님의 난(蘭) 농장이 떠올랐다.
“곤충체험학습장을 떠올린 건 요즘 아이들에게 즐거운 추억을 만들어주고 싶었기 때문이에요. 어렸을 때부터 반딧불에 물방개 잡으러 다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거든요. 시장조사를 해보니 공주에는 곤충 관련 사업이 없어 적격이라고 생각했어요. 난 농장이었던 하우스에 곤충체험학습장을 조성했죠.”
그는 강원도와 충청도의 곤충체험장을 답사하기도 했지만 초기 계획은 미흡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다행히도 2007년 농촌진흥청이 주최한 농촌교육농장사업에 선정되어 2,500만 원을 지원받았고 그 덕에 ‘아이러브벅스’를 개설할 수 있었다. 초등학교 교과서와 연계한 프로그램이 인기를 얻어 충남교육청에 체험학습농장으로 선정되어 방문율도 높은 편이다.
“처음엔 단순체험으로 시작했어요. 사슴벌레나 장수풍뎅이를 대량 사육해 분양하는 수준이었죠. 그런데 요즘은 대형마트에서도 곤충을 파는 추세잖아요. 보다 정교한 프로그램을 기획해야겠다는 생각 끝에 교과서와 연계한 아이디어가 떠올랐죠.”
박 씨는 내실을 다지고자 초등학교 1학년부터 6학년까지 교과서에 맞는 학년별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아이들 교육에 공신력을 싣고자 지난해 ‘방과후 지도사’와 ‘체험학습지도사’ 자격증까지 취득했다. 방과 후 수업의 일환으로 ‘꿀벌이야기’라는 프로그램을 개발해 도시학교에 벌도 분양한다. 앞으로도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는 프로그램을 꾸준히 업그레이드할 예정이라는 그의 얼굴은 자신감으로 가득했다.
곤충체험학습장에서 곤충체험캠프장으로의 변화
최근 ‘아이러브벅스’는 곤충체험학습장에서 곤충체험캠핑장으로의 변화를 꾀하고 있다. 농촌진흥청에서 주최한 강소농 육성 프로그램에 선정되어 1600만 원의 지원을 받게 됐기 때문이다. ‘강소농’이란 작지만 강한 농업인을 뜻하는 단어로 농가의 연수익을 10%가량 향상하기 위해 마련된 사업이다.
“지원 덕분에 곧 체험장 옆으로 인디언 텐트 다섯 동이 들어섭니다. 덕분에 현재 진행 중인 야간체험 프로그램이 더욱 활발해질 수 있을 것 같아요. 낮에는 벌집 밀랍을 이용해 비누나 양초를 만들고, 밤이면 반딧불을 보며 도란도란 이야기도 나누며 추억을 쌓을 수 있을 테니까요.”
곤충 대부분이 야행성인 점에서 착안한 야간체험은 아이러브벅스의 인기프로그램. 곤충도 겨울잠을 자기 때문에 늦봄이나 초여름에 더욱 활기를 띤다. 게다가 인디언 텐트 안에서는 불도 땔 수 있고 침낭에 코펠까지 구비할 예정이니 곤충과 함께 캠핑의 분위기를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
“야간체험은 저희 체험장의 자랑이에요. 그런데 정작 아이들이 좋아하는 프로그램은 따로 있습니다. ‘엄마 아빠 내 말 좀 들어보세요’라는 프로그램인데요. 아이들과 부모님의 역할을 바꾸기가 주된 골자예요. 아이의 입장에서 생각해보자는 취지에서 개설했죠.”
박 씨의 최종 목표는 ‘아이들이 행복하게 사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시종일관 아이들에 대한 관심과 사랑을 강조한다.
가족 사랑을 다시금 깨닫게 한 귀촌
아이러브벅스가 체험장에서 캠핑장으로 콘셉트를 전환한 근본적인 이유 역시 아이들 때문이었다.
“요즘 저희 아내가 자주 하는 말이 있어요. 귀촌 후 제가 부처님으로 바뀌었대요. 도시에서는 일에 부대끼고 피곤에 젖어서 가족을 잘 돌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고향에 내려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마음에 여유가 생기니 주변을 챙기게 됐어요. 그때 제 눈에 들어온 게 딸아이가 맨발로 돌아다니는 모습이었어요. 정말 보기 좋더라고요.”
그가 다정한 남편으로 변하게 된 결정적 계기는 아내의 재취업이었다.
“아내는 산부인과 간호사였어요. 사회생활을 하던 사람이 집에만 있으니까 무기력해지더라고요. 경제 상황도 영향을 미쳤겠지만, 아내의 마음 건강을 위해서라도 출근을 하는 게 이롭겠다고 판단했습니다. 아내가 아침 일찍 출근하고 나니 아이들을 돌보는 건 자연스레 제 몫이 되었어요. 그런데 애들 유치원 보내는 게 보통 힘든 일이 아니더군요. 깨우고 씻기고 먹이는 일이 그렇게 어려운 줄 몰랐어요. 아내가 그동안 고생 많았다는 걸 깨닫게 됐죠.”
박 씨가 시골에 내려와 깨닫게 된 사실이 하나 더 있다. 바로 아이를 키우는 부모의 역할이다. 귀촌하지 않았다면 느끼지 못했을 소중한 가치이기도 하다.
“이상적인 이야기라고 생각하시겠지만 저는 아이들이 건강해야 이 사회도 건강해진다고 믿어요. 처음에는 아이만 바뀌면 좋은 사회가 될 거라고 여겼습니다. 하지만 제 아이를 직접 돌보고, 또 곤충체험학습장을 하면서 여러 학부모님을 만나보니 생각이 달라졌죠. 부모님의 건강한 정신이 아이의 건강한 마음을 만듭니다. 그래서 제가 가족 단위 체험을 추구하는 거고요.”
점점 커지는 체험장 규모가 기쁘면서도 한편으론 달갑지 않다는 박 씨의 얘기에는 진심이 묻어 있다. 가족과의 유대관계를 강조하는 가장으로서 식구들과 함께 보낼 시간이 줄어든다는 것은 아쉬운 일이기 때문이다.
“무조건적인 사업 확장은 의미가 없는 것 같아요. 가족에게 소홀해지지 않도록 제가 관리할 수 있을 만큼만 늘릴 생각이에요. 대신 퀄리티 높은 프로그램으로 어필할 계획입니다. 그래서 요즘 아동심리학 공부를 시작했어요. 체험을 통해 아이들의 마음을 어루만질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에서죠.”
귀촌 후 가장 달라진 점은 ‘나 자신’이라는 박영배 씨. 가족이 행복하지 않으면 자신의 행복도 불가능하다는 이 남자의 포부 역시 ‘가족’으로 귀결된다.
“농사 이외의 직업이 필요한 귀촌은 반드시 경영능력이 필요합니다. 명확한 콘셉트, 자금조달 방법 등 모든 것을 공들여 준비하세요. 가정의 평화를 위해서라도 반드시 거쳐야 할 과정입니다.”
귀촌으로 인해 좋은 아들, 좋은 남편, 좋은 아빠가 되었다는 박영배 씨. 그는 예비 귀촌인에게 ‘열정’을 지니라고 당부했다. 귀촌의 이유가 단지 돈뿐이라면 포기하기 십상이라는 게 그 이유였다. 고향에 뿌리내린 그의 열정이 식지 않는 한 ‘아이러브벅스’의 승승장구는 예견된 일임이 분명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