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임금 값 햄버거도 불티… 베트남, 소비 빅뱅

지난 16일 베트남 남부의 경제 중심지인 호찌민은 최대 명절인 '뗏(음력 설날)'을 앞두고 명절 분위기가 완연했다. 시내 중심가는 남부 상징인 분홍 매화 장식으로 꾸며져 있었다. 빈컴·팍슨 등 대형 백화점은 눈에 띄는 곳에 세일 안내판을 내걸고 있었다.

최대 번화가인 동커이가에서 자동차로 15분 정도 거리인 롯데리아 리쯩끼엣점은 해거름이 되자 가족 단위 고객이 오토바이를 타고 몰려들어 빈자리를 찾기 힘들었다. 인기 메뉴인 새우버거 세트는 6만4000동(약 3200원). 대졸 근로자의 하루치 임금에 달한다. 중학생 빗짬(15)은 "1주일에 최소 한 번은 이곳을 찾는다"면서 "가격은 조금 부담스럽지만 가족이나 친구와 대화를 나누기 좋은 장소"라고 말했다.

베트남이 소비에 눈을 뜨고 있다. 1인당 연간 국민소득은 아직 1500달러를 밑돌지만, 외식과 쇼핑을 즐기는 국민은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다. 베트남 소비 시장을 선점(先占)하려는 글로벌 업체의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다.

◇소비 시장 빠르게 성장… 글로벌 유통업체 속속 진출

베트남은 젊은 국가다. 9000여만명 인구의 평균 연령이 28세 안팎이다. 35세 미만이 전체의 60% 이상을 차지한다. 현지에 진출한 우리나라 기업들은 공통적으로 "서구 문화에 익숙한 대도시 거주 20~30대가 과시적 소비 성향을 보인다"고 분석했다.

예를 들어 애플 휴대전화 아이폰은 아직 베트남에 정식 수입되지 않는다. 하지만 하노이나 호찌민 거리에선 아이폰을 들고 다니는 사람을 심심찮게 만날 수 있다. 상당수 휴대전화 판매점은 아이폰을 판매한다는 안내문을 걸어놓았다. 컨설팅 기업 AT커니는 올해 베트남 소매 시장 매출이 지난해보다 40% 이상 늘어난 1130억달러가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다국적 대형 외식·유통기업이 최근 베트남 진출 속도를 높이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스타벅스는 다음 달 호찌민에 베트남 1호점을 개설한다. 맥도날드도 연내 베트남 진출을 확정 지은 상태다. 일본 유통 기업 이온(AEON)은 1억달러 이상을 투자, 올해 호찌민에 복합유통센터 개설을 시작으로 주요 도시에 잇따라 매장을 개설할 계획이다. 세계 최대 유통 기업 월마트도 베트남 진출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홍평규 롯데마트 베트남법인장은 "베트남은 현재 할인점·수퍼마켓 등 신유통 혁명의 초기 단계에 와 있다"면서 "경제 상황이 좋지 않은 지금이 유통 시장 선점의 최대 기회"라고 말했다.

◇한국 기업도 선전… 현지 의식주 변화

베트남 시장에 일찌감치 진출한 우리나라 식품·소비재 기업의 선전도 눈에 띈다. "한국 기업이 베트남의 의식주(衣食住) 문화를 바꾸고 있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다.

롯데리아는 지난해 처음으로 KFC를 제치고 현지 패스트푸드 시장 1위에 올랐다. 1998년 호찌민에 1호점을 개설한 이후 14년 만이다. 매장 수는 지난해 말 현재 138개.

강형희 베트남법인장은 "베트남이 2019년 아시안 게임 개최를 앞두고 있어 외식 시장이 당분간 큰 폭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높다"면서 "올해부터 매년 30개 이상의 매장을 개설해 시장 우위를 지켜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베트남에서 가장 높은 건물은 모두 한국 기업이 건설했거나 건설 중이다. 가장 높은 하노이 경남랜드마크72(72층)는 경남기업이, 둘째로 높은 호찌민 비텍스코 금융센터(68층)는 현대건설이 건설을 맡았다.

포스코건설이 하노이 북앙카인 신도시에 짓고 있는 1000여 가구 규모 아파트에는 한국식 평면이 적용됐다. 열대지방이라 층고(層高)가 1.5배 정도 높다는 점을 빼면 한국 아파트와 거의 비슷하다. 현관의 디지털 도어록은 '삼성' 상표가, 주방 가스레인지는 'LG' 브랜드가 붙어 있었다.

직장인 도두이쯩(32)씨는 "한국 건설업체가 지은 아파트는 평면 설계나 내부 자재가 우수하다"면서 "한국 기업이 건설한 아파트에 사는 것이 최대 목표 가운데 하나"라고 말했다.

한류(韓流) 영향으로 한국산 패션 제품도 인기다. 화장법에서 패션까지 한국식을 따라하려는 경향 때문이다. LG생활건강은 오휘·빌리프 등 고유 브랜드를 내세워 현지 화장품 시장 1위로 올라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