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동현의 모던 타임스] [41] 폭증하는 복권 판매 뒤에는 환상 좇는 빈곤층 있었다

복권의 역사는 길다. 복권을 팔아 중국 진나라는 만리장성을 쌓고 로마제국은 콜로세움을 세웠다. 숫자를 적은 표(票)를 팔아 추첨으로 당첨금을 주는 원초적 형태의 복권은 우리 역사 속에서도 찾을 수 있다. 복권에 적힌 숫자와 대통 속 콩알에 쓰인 숫자가 맞으면 당첨금을 주는 확률 10분의 1인 '야바위'와 36분의 1인 '삼십육계(三十六契)'를 비롯해 산통을 돌려 안에 든 바가지 조각에 쓰인 숫자를 맞히는 '산통계(算筒契)'와 100명 단위로 복권을 파는 '잡백계(雜百契)'가 상품화폐 경제가 발달하던 조선 후기에 성행했다.

그러나 '야바위 짓' '산통을 깬다' '삼십육계 줄행랑'이라는 당시 세태를 반영한 말들이 요즘도 일상어로 쓰일 만큼 속이고 깨고 도망치는 일이 다반사였던 이 전통 복권들은 공공시설 확충 재원 마련을 위해 국가가 주도해 발매한 근대적 복권과는 거리가 멀었다. 일제 패망이 코앞에 다가온 1945년 4월 '승찰(勝札)'이란 이름으로 판 복권도 마찬가지였다. 복권을 팔아 웨스트민스터 다리와 대영박물관 등을 세운 영국이나 50여개 대학과 300여개 학교를 건립한 미국과 일제는 달랐다. 침략 전쟁의 전비(戰費)를 우리 민초(民草)들 호주머니를 털어 메우려 했던 이 복권은 또 다른 착취 도구에 지나지 않았다.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 복권은 대한민국이 탄생하기 전인 1947년 12월 1일부터 두 달간 올림픽후원회가 발행한 100원짜리 '올림픽 후원권'이었다. 서울 지역에서 140만장이 발매된 이 복권은 1등 당첨금이 당시 집 한 채 값인 100만원이었고, 런던올림픽에 우리 선수단을 파견해 신생 대한민국을 전 세계에 알릴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다. 본격적인 복권 시대는 1969년 9월 발매된 주택복권과 함께 열렸다. 이후 1990년대에 인기를 끈 엑스포복권과 체육복권 등 즉석 복권 시대를 거쳐 2002년에 나온 로또는 10년 만에 복권 시장의 95%를 장악한 공룡으로 성장하였다.

반세기가 넘는 우리나라 복권의 역사가 주는 교훈은 명료하다. 굴릴수록 커지는 눈사람처럼 해를 거듭할수록 폭증한 복권 발행액은 기회의 환상을 좇는 상대적 빈곤층이 늘었다는 방증이다. 희망의 출구가 막힌 이들을 위한 복지 확대가 필요한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