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古書도 희귀본도 아닌데… 새책보다 왜 중고가 5배 더 비싸지?

고서(古書)나 잡지 창간호가 비싼 가격에 팔리는 것은 왕왕 볼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 현대문학 작가의 소설이 새 책보다 훨씬 비싼 값에 중고로 팔리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주로 개인 간 중고 책 직거래에서 발생하는데, 국내 출판사가 번역 판권을 포기한 외국 현대문학 작가의 작품이 대개 그렇다.

미국 현대문학에서 블랙 유머로 이름난 커트 보네거트(1922~2007)의 책 '제일버드(Jailbird)'는 새 책 정가가 6500원인데 중고 책이 3만1000원에 인터넷 서점 '알라딘'에 올라와 있다. 1994년 웅진출판이 내놓은 이 책은 이미 절판됐고, 중고 책이 새 책 5배 가까운 값에 나온 것이다.

역시 독특한 문체로 독자가 많은 미국 현대문학 작가 폴 오스터(63)의 책 '소멸'은 새 책 정가가 7500원이지만 중고 책은 2만원에 나와 있다. 희귀본도 아니고 컬렉터의 수집 대상도 아닌 책들이 새 책 정가보다 훨씬 비싼 값에 중고로 팔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렇게 인기가 높다면 왜 출판사는 절판된 책을 다시 찍지 않는 것일까.

폴 오스터의 책을 번역 출판했던 '열린책들' 편집부 김정현씨는 "폴 오스터 책은 '빨간 공책'이 2쇄를 찍어 5500부 팔린 것이 최고였을 만큼 판매 실적이 저조했다"며 "판권 재계약을 하고 재인쇄를 해도 수익을 보장할 수 없기 때문에 다시 찍을 수는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인터넷에서 폴 오스터 중고 책이 고가에 팔리는 것은 마니아들의 수요로 보인다"고 했다.

한국에서 커트 보네거트의 책을 마지막으로 발매했던 '아이필드'의 유연식 대표는 "커트 보네거트의 책으로 출판사의 이미지가 좋아지고 충성도 높은 독자를 확보했으나 '제5 도살장'이 7000부가량 팔린 게 최고 기록"이라며 "큰 수익이 나지 않아 2008년에 출판권을 포기했으나 여전히 그의 책을 찾는 독자가 많아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이렇게 일부 문학 작품의 '중고 책이 새 책보다 비싼 경우'는 '중고 책 시장은 출판 시장의 적(敵)이 아니다'는 이론을 입증해준다는 해석이다. 뉴욕대의 아닌디아 고즈 교수와 카네기 멜론대의 마이클 스미스, 라울 텔랑 교수의 2005년 논문 '중고 책의 인터넷 거래'는 "중고 책이 인터넷에서 팔림으로써 출판 시장이 손해를 보는 것보다 이윤이 더 크다"고 주장했다.

이 논문에서 저자들은 "사람들은 새 책을 살 때 자동차처럼 재판매 가치(resale value)를 따지는 경향이 있으며, 이 때문에 100달러에 산 책을 1년 후 50달러에 판다면 '50달러에 새 책을 1년간 빌린다'고 생각한다"며 "이는 결과적으로 사람들이 새 책을 사도록 유인하는 효과를 낳는다"고 주장했다.

이렇게 '재판매 가치'가 높은 책들은 다시 판권을 사들여 번역 출판하는 일도 생긴다. 커트 보네거트의 책들은 '문학동네'에서 다시 나올 예정이다.

문학동네 오영라 편집부장은 "커트 보네거트의 '제5 도살장'과 '고양이요람' 번역 출판권을 2011년 사들였다"며 "올해 또는 내년에 다시 번역해 내놓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는 "많이 팔리지 않더라도 출판사 이미지를 높이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