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배우·방언으로 만든 독립영화 세계 정상에

제주를 위한, 제주에 의한, 제주의 영화가 세계 독립영화의 최고 자리에 올랐다.

오멸(42) 감독의 영화 '지슬'이 27일(한국 시각) 미국 선댄스영화제 시상식에서 월드 시네마 극영화 부문의 최고상인 '심사위원대상'을 받았다. 선댄스영화제는 극영화와 다큐멘터리의 두 경쟁 부문이 있으며 부문별로 미국 영화 1편, 월드 시네마 1편 등 모두 4편의 최고 작품에 심사위원대상을 준다. 선댄스영화제는 명배우 겸 감독인 로버트 레드포드가 만든 세계 최고 권위의 독립영화제로 이 영화제 경쟁 부문에서 한국 영화가 상을 받은 건 처음이다.

'지슬'은 제주에서 나고 자란 감독이 제주를 배경으로 제주 출신 배우들과 제주 방언(사투리)으로 찍은 작품이다. 선댄스영화제 측은 이날 수상작을 호명하기 전에 "이 비범한 작품은 만장일치로 뽑혔다. 심사위원들이 수상자를 결정하는 데 1분도 걸리지 않았다"고 했다. 또 "이 영화의 이미지는 강렬한 감정을 전달하면서 우리 모두에게 깊은 영향을 미쳤다. 감독은 특정한 역사적 사건을 훨씬 넘어서서, 시간과 장소를 초월한 그만의 세계를 만들었다"고 대상 선정 이유를 밝혔다.

시상식 하루 전 한국으로 돌아온 오 감독은 시상식에 영상을 보내 "영화가 제주 사람들의 통증을 이야기하고 있으니 수상의 영광도 그들과 함께 나누고 싶다. 그리고 이 영화를 많은 사람에게 알릴 수 있는 기회를 준 선댄스영화제에도 감사한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시상식 직후 오 감독은 본지와의 통화에서 "선댄스영화제 일정 중 거의 극장에만 있었기 때문에 내 영화에 대한 평가도 제대로 못 들었고, 상을 받을 줄은 더더욱 예상하지 못했다"고 했다. 그는 "선댄스에서 영화 상영 당시 칠순, 팔순의 관객이 많았고, 영화를 본 미국 중년의 여성 관객이 '고맙다'면서 눈물을 흘린 것이 기억난다"며 "촬영 완성도가 높다는 평과 함께 흑백영화를 만든 이유나 영화 속에서 나타난 한국 고유의 풍습에 대해 묻는 질문이 많았다"고 했다.

오 감독은 제주대 미술대에서 한국화를 전공했다. 흑백영화인 '지슬'은 4·3사건 당시 공포적 분위기를 피해 서귀포 안덕면 동광리 큰넓궤 동굴로 숨어들었던 마을 주민들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지슬'은 '지실(地實)'의 제주도 방언으로, 감자를 말한다. 그는 "감자는 전 세계의 소울 푸드이고 생존과 희망을 상징하기 때문에 제목으로 정했다"고 했다. 제작비는 2억5000만원. 오 감독은 "제주영상위 등에서 일부 지원받고 개인적으로 빚도 냈다"며 "집 보증금까지 탈탈 털었다. 이제부터 여관을 전전하며 살아야 한다"며 웃었다.

오 감독은 '뽕똘' '어이그 그 귓것' '이어도' 등 자신의 모든 작품을 제주에서 제주 출신 배우들과 제주 방언으로 만들었다. 그래서 그의 영화는 국내에서 상영해도 '한글 자막'이 필수다. 감독은 제주 영화만 줄기차게 찍는 이유에 대해 "나한테 서울은 중요하지 않다. 내 세계의 중심은 제주다. 많은 관객을 만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일단 내 세계를 다루는 게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다"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