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고 찍는 사진

행위예술가나 설치 작가들이 남긴 연출 사진은 파격적 영상으로 깊은 기억을 남긴다. 아라리오갤러리 서울 청담에서 3월 3일까지 열리는 ‘Maden Pictures 13’은 오로지 ‘사진 그 자체’를 위한 연출 사진 집합소. 전통 사진에서 가장 흔한 피사체인‘인체(人體)’마저도 아이디어를 돋보이게 하기 위한‘도구’로 사용됐다.

장성은(35)은 인체를 공간의 길이·부피 등을 재는 도량형으로 이용했다. 그는 파리의 좁은 골목에 지인들을 일렬 종대로 세웠다. 앞사람 등과 뒷사람 가슴이 맞닿도록 빽빽이 세웠더니 모두 19명이 들어갔다. 사람수가 그대로 골목‘너비’가 된 이 작품 제목은‘Rue Visconti(비스콘티 거리)’. 대지미술가 크리스토·잔 클로드 부부가 1961년 베를린 장벽 반대를 외치며 240개의 휘발유통으로 가로막아 유명해진 거리다. 실제 골목 폭은 3.5m. 작가는“파리 유학 시절, 그 골목을 자주 지나다녔다. 한국 골목보다 훨씬 좁게 느껴졌는데, ‘인간’의 편의를 위해 정해졌을 골목의 너비가 과연 몇 명의 인간을 위한 것인지 한번 재 보자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전시에는 가구 판매점 이케아 쇼핑백에 몇 명이 들어갈 수 있는지를 측정해 본 작품 등 그의 ‘공간 측정’연작이 나왔다.

박현두(42)의 관심사는‘배경과 인간’이다. 그는 스타크래프트 게임 세트장에 패배만 거듭해 의기소침한 아마추어 복서를 세우고 사진을 찍었다. 스타크래프트는 복서가 가장 좋아하는 게임.“ 늘상 패배하던 현실의 링에서 벗어나 승리의 기쁨을 맛봤던 가상의 링에 선다면, 복서에게 용기와 힘이 솟아나지 않을까 생각했다.”그는 텅 빈 콘서트홀에서 홀로 악보를 넘기는 페이지 터너, 공연이 끝난 후 손전등을 들고 좌석을 점검하는 공연장 직원 등 커다란 무대에서 아주 작은 역할을 맡고 있는 이들을 점처럼 찍은 사진들도 전시에 내놨다.

스톡홀름 거주 작가 곽현진(39)의 사진은‘여고괴담’스웨덴판. 자연사박물관 전시실에 불쑥 등장하거나, 폐가전제품이 가득 찬 공터에서 냉장고를 옮기는 소녀들은 한결같이 교복을 입고 있다. 단지 유니폼을 입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소녀들의 행위는 엄숙하고, 무겁고, 때론 폭력적으로 느껴진다. 전시에는 이 밖에 19세기 영국의 거문도 점령사건을 재구성한 김아영(34)의 영상,‘ 티파니에서 아침을’ 등 영화의 유명한 장면과 작가가 연출한 장면을 결합해 영화와 실재의 경계를 모호하게 한 오용석(37)의 작품도 소개됐다. 일상을 간지럽히는 엉뚱함을 맛볼 수 있는 전시다. (02)541-57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