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간 장벽 없애… 보유 특허론 세계 6강 화학기업

지난 24일 충남 대덕연구단지 LG화학 기술연구원. 정문을 통과할 때 미국 실리콘밸리의 글로벌 기업 연구소를 방문하는 느낌이 들었다. 화강석과 유리로 치장한 3층 높이의 건물 10여개가 ㄷ자 형태로 연이어 있다. 본관 건물 앞에는 인공 호수, 뒤편에는 국제 규격의 천연 잔디 축구장이 눈에 들어왔다. 부지 면적 28만㎡(8만7000평)에 1600여명의 연구원이 일한다. 대덕단지에 있는 민간 회사 중 가장 큰 규모다.

내부에 들어가니 로비에서 3층 천장까지 건물 중간이 뻥 뚫려 있었다. 유진녕 기술연구원장(부사장)은 "층고(層高)가 높아야 그 안에서 일하는 직원들의 창의성이 올라간다는 학계 보고서를 참조했다"고 말했다.

◇"여기서 퍼스트 무버 사례를 만든다"

1994년 처음 설립될 때 4개 동의 건물뿐이었지만 이후 확장을 거듭, 11개 동으로 늘어났다. 다시 2개 동을 신축 중이다. 연구소 건물을 최고 시설로 짓고 공격적으로 확장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우리 경제가 지금까지 시장을 직접 만들고 제패하는 '퍼스트 무버(first mover)'가 된 적이 없었어요. 이 연구소는 퍼스트 무버를 만든다는 목표로 만든 시설입니다."(유진녕 기술연구원장) 세계 1등 제품인 반도체·TV·조선 등은 모두 미국·유럽에서 일본으로, 다시 한국으로 산업 변동이 일어난 경우다. 기존의 시장이 있고 한국은 빠르게 추격하는 전략을 통해 1등으로 올라섰다.

연구원들은 '세계 최초'란 말을 자주 했다. 이기수 연구위원은 "중국과 중동의 공장 증설에 맞서려면 고부가가치 제품을 개발해야 한다"며 "수만 번의 실험밖에 답이 없다"고 했다. 예컨대 원유에서 뽑아낸 나프타를 분해하고, 여기서 나온 원재료를 가지고 여러 공정을 거치면 플라스틱이 생산된다. 이 과정에서 어떤 촉매(화학반응을 일으키는 물질) 기술을 적용했느냐에 따라 플라스틱 성능이 달라진다.

LG화학이 자체 개발한 촉매로 앨라스토머(Elastomer)란 말랑말랑한 플라스틱을 2008년 만들었을 때 경쟁사들은 깜짝 놀랐다. 자동차 범퍼, 신발 등 충격 흡수에 사용되는 이 제품은 당시까지 다우케미칼, 엑슨모빌만이 생산하는 제품이었다.

전기차 배터리(2차 전지) 연구동. 거대한 검사 장비 앞에서 배터리 성능 실험이 한창이다. 전기차 시장은 한국이 가장 앞서 있는 분야 중 하나다. 최승돈 팀장은 "2차 전지의 주요 소재인 양극재·음극재·전해액·분리막을 잘 배합해서 배터리 수명과 성능을 올리는 것이 승부처"라고 말했다. 현재 아반떼 정도 크기의 전기차가 한 번 충전으로 갈 수 있는 거리는 120~150㎞. 연구소에선 2~3년 안에 200㎞ 가도록 연구 중이다.

◇효과적인 협업은 세계 최고 수준

LG화학의 특허 건수는 파죽지세로 늘고 있다. 작년 한 해에만 2954건을 출원했다. 전년보다 40% 증가한 수치다. 미국 특허 평가 기관인 '페이턴트 보드(The Patent Board)'는 지난해 발표한 미국 내 특허 경쟁력 세계 기업 순위에서 LG화학을 화학 분야 6위에 올려놓았다. 앞선 회사는 듀폰(미국)·바스프(독일)·다우케미칼(미국)·하니웰(미국)·니토덴코(일본)밖에 없다. 2007년에는 75위에 불과했는데 불과 5년 만에 최상위권으로 올라선 것이다.

연구소의 최대 강점은 협업(協業)이다. 팀 간 장벽은 미국·독일 등 선진 기업에서도 골칫거리다. 한 팀에서 추진하는 연구 프로젝트는 다른 팀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데 개인주의·실적주의 때문에 협업이 곤란해진다.

해답으로 내놓은 것이 '가상의 팀'(virtual one team)이다. 이곳에선 208개 팀이 움직인다. 하지만 특정 프로젝트를 가동하게 되면 각 팀에서 관련 있는 연구원들이 태스크포스 같은 직제 표에 없는 팀을 꾸린다. 예컨대 세계 TV시장을 휩쓴 3D FPR을 개발할 때 정보전자소재·광학·성분분석팀 등 3개의 팀에서 '가상의 팀'을 짰다. 유진녕 원장은 "연구·개발은 생존 차원에서 벌여야 하는 한국 산업계의 숙명"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