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이현의 히어로&히로인] [46] 여행처럼 도중에 그만둘 순 없는 것, '삶'

어른들의 장래 희망은 여행이라는 말이 있다. 흔히 여행은 인생에 비유되곤 한다. 사람들이 여행을 갈망하는 이유는 여행 과정이 인생에 대한 안전한 축약본이기 때문은 아닐까. 둘 다 길을 떠난다는 표현으로 설명할 수 있고, 길 위에서 언제 어떤 돌발 상황에 맞닥뜨리게 될지 예측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여행과 삶은 일견 닮은꼴인 것도 같다.

영화 '사이드웨이(Sideways)'의 두 친구, 마일스(폴 지아마티)와 잭(토머스 헤이든 처치)도 여행자다. 삼라만상의 진리를 깨치기 위해서라면 해골바가지에 고인 물이라도 마실 각오가 되어 있는 비장한 구도자가 아니다. 우리나라 식으로 말하자면 한 손에 자판기의 일회용 종이컵을 들고 또 한 손엔 담배를 들고 하릴없이 고속도로 휴게소 주차장을 서성이는 '아저씨들'의 여행이라고 해 두자. 배우인 잭은 부유한 약혼녀와 그 부모 앞에서는 순한 양이지만 친구와 여행길에 나서자마자 가면을 벗고 본래의 건들대는 모습으로 돌아온다. 그는 어차피 다시 오지 않을 인생 여행을 맘껏 즐겨보자는 입장이다.

마일스는 더 복잡하다. 그는 손에 잡힐 것 같던 꿈이 허망한 신기루가 되어 가는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상태다. 교사라는 직업이 있지만 간절히 소설가가 되고 싶고, 이혼을 했지만 전처를 잊지 못하고 있다. 몸은 이쪽, 마음은 저쪽이다. 그 벌어진 틈 사이로 들이치는 바람에 뼛속이 시리다. 점점 허무주의자가 되어가는 마일스에게 여행은 어떤 전환점일까.

여행길에서 그들은 새로운 상대와 인연을 맺기도 하고, 상처를 주고받기도 하고, 이런저런 사고에 맞닥뜨리기도 한다. 그러나 여행이 지속됨에 따라 길 위에서의 순간순간들은 또 다른 일상과 또 다른 고민으로 남겨져 여행자들의 마음을 무겁게 한다는 건 미처 예상치 못했던 바다. 떠나봐야 지리멸렬한 삶을 벗어날 곳은 아무 데도 없고, 여행자들은 떠나온 집으로 언젠가 다시 돌아가야 한다. 영화의 절정은 여행이 끝난 뒤에 온다. 모든 꿈이 좌절된 마일스가 맥도널드에 홀로 앉아 고이 아껴뒀던 고급 와인을 혼자 들이켜는 장면이다. 그제야 우리는 깨닫는다. 여행은 내키면 그만둘 수도 있지만, 삶은 결코 그럴 수가 없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