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View] "주식시장 3월까진 고전할 듯… 환율영향 적은 금융株 주목하라"

연초부터 국내 주식시장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미국·일본·중국·유럽 등 전 세계 주식시장이 살아날 기미가 보이고 있는데, 유독 한국 코스피 지수만 100포인트 가까이 하락하며 힘을 내지 못하고 있다. 글로벌 펀드인 뱅가드가 벤치마크를 변경하느라 한국 주식을 매주 4000억원씩 팔고 있기 때문이란 설명으로는 좀처럼 납득이 가지 않는다.

약 4조원의 자산을 운용 중인 박건영 브레인자산운용 대표의 대답은 명쾌했다. 박 대표는 "한국 제조업이 인접 국가보다 경쟁력이 없어졌기 때문"이라며 "그저 환율 덕분에 주가가 올랐던 내실 없는 기업들을 중심으로 실적이 나빠지면서 주가도 내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은 지난해 국가 신용등급이 2단계가 상향됐습니다. 그러면 한국 원화도 다른 나라에 비해 강해져야 하는데, 충분히 반영이 되지 않고 있었죠. 그동안 어떤 변화가 있었나요. 일본은 마쓰시타·엘피다·샤프와 같은 유수한 기업들이 환율 때문에 무너졌지요. 반대로 한국은 많은 수혜를 입었습니다. 이제 국내 수출 기업들은 그동안 환율 덕분에 공짜로 먹었던 것들을 내뱉어야 할 시점이 왔습니다. (야속하게 들릴지 몰라도) 투자자들은 냉정하게 현실을 파악하고 투자 대상 기업이 원화 강세를 감내할 수 있는 이익 구조인지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합니다."

박 대표는 미래에셋 인디펜던스·디스커버리펀드, 트러스톤 칭기스칸펀드 등 시장에서 화제를 뿌렸던 고수익 펀드를 운용했던 펀드매니저 출신이다. 지난 2010~2011년 시장에서 자문형 랩(자문사 조언을 바탕으로 증권사가 증권을 매매해 주는 서비스) 돌풍을 일으킨 주인공이기도 하다. 그는 지난해 투자자문사에서 자산운용사로 간판을 바꿔 달고 헤지펀드 '백두'를 출시, 2200억원의 기관 자금을 끌어모았다. '박건영 마니아'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골수팬이 많은 그에게 머니섹션 M이 투자의 혜안을 들어봤다.

―연초부터 전 세계 증시가 많이 들썩거린다.

"전 세계에 유동성은 많이 풀려 있는데 금리는 낮아 주식 투자 하기에 환경이 굉장히 좋은 편이다. 중국 경제는 이미 4개월 전부터 바닥을 치고 회복 쪽으로 가고 있으며, PMI(구매관리자지수)를 봐도 3개월 전부터 '불'(bull·상승세)한 경제로 바뀌고 있다. 미국의 주택 문제도 6개월 전부터 해결되는 모습을 보이면서 호전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보면 주식시장에 우호적이다."

―왜 유독 한국 증시만 비실대나.

"지난해 국내 시장은 삼성전자와 현대차라는 양대 축을 중심으로 좋은 흐름을 보였다. 그러다 작년 3분기 이후에 자동차가 거시경제에 영향을 받아 먼저 나빠졌고, 지금은 삼성전자만 간신히 버티는 양상이다. 한국 기업들의 4분기 실적은 형편없어 상당수가 '어닝쇼크'(실적악화)를 겪을 것이다. 올 1분기 역시 환율 변수 때문에 실적은 썩 좋지 않을 것이다."

―수출기업 실적 부진은 예상됐던 악재다.

"한국 기업의 인건비는 비싸져서 1인당 산업 생산성은 나빠졌다. 그간 우리나라 중간재의 주요 수요처였던 중국에선 부품 등의 자급자족이 늘었다. 후진국이라고 여겼던 중동이나 아세안 국가들은 우리 뒤를 바짝 추격 중이다. 삼성전자처럼 한 단계 레벨업한 기업은 글로벌 브랜드를 갖고 있으니 경기가 나빠져도 깜짝 실적을 낼 수 있다. 하지만 그동안 어영부영 장사를 해왔던 기업들은 힘들어질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인데, 어떻게 코스피가 좋아질 수 있겠는가. 작년 코스피지수가 2000을 넘었던 것은 전 세계 매크로(거시경제)가 좋아지는 덕에 잠깐 좋았을 뿐이다. 한국 기업들의 자체적인 경쟁력만 갖고서 시장이 회복하려면 시간이 오래 걸릴 것이다."

―수출 기업들의 주가는 더 하락하겠나.

"거시경제 변화가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고 본다면, 지난 5년간 누렸던 것들은 내려놓고 대외환경에 맞춰 달라져야 한다. 수출 제조업들이 고전하더라도 일정 수준의 폭락은 있을 수 없을 것이다. 앞서 말했듯 주식시장이 전 세계적으로 좋기 때문이다. 그러나 글로벌 펀드인 뱅가드가 1~6월에 10조원쯤 주식을 처분할 예정이어서 1월 주식시장은 좋아지긴 어렵다고 본다. 외국인들 입장에서 보면 뱅가드가 절반 정도는 팔고 난 다음에 싼 가격에 주식을 받으려고 들어올 가능성이 커서다. 6개월간 10조원어치 물량은 어마어마하게 큰 자금이다. 3월 이후부터 매수·매도 공방이 조금씩 생겨나고 2분기 이후 자금이 유입될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어느 산업에 주목해야 하나.

"고성장기에는 성장을 이끌 대형주에 집중해야 했다. 하지만 저성장 사회는 다르다. 일본의 사례를 보자. 제조업 비중보다는 점차 서비스업 비중이 국가 경제를 지탱하는 쪽으로 커졌다. 우리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이미 그런 징조가 보인다. 서비스업 중에서도 특히 은행이나 보험 같은 금융주가 올해 많이 올랐다. 환율 움직임에서 자유롭기 때문일 것이다. 다른 호재도 많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부동산 문제는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가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금융산업 구조조정도 많이 진행됐다. 금융업종은 성장 산업이 아니라서 눈에 확 뜨이는 큰 수익을 내긴 어렵지만 다른 주식을 사서 수익을 내기도 어려운 시절엔 반사이익을 볼 수 있다. 지난 2005년에 원화 강세가 되었을 당시에도 금융주 강세가 굉장히 돋보였다."

―헤지펀드 출시도 저성장과 관계 있나.

"한국은 2011년 이후 확연히 저성장 사회에 접어들고 있다. 주식이 한 방향으로만 좋아지긴 어렵다는 얘기다. 일부 산업은 여전히 성장을 거듭하고 있지만, 일부 산업은 이미 정체기에 접어들었다. 앞으로 국내 주식시장은 좋고 나쁜 산업들이 혼재되어 유지될 가능성이 크다.그렇다면 투자법도 달라져야 한다. 굉장히 '불'(bull)한 시장이라면 헤지펀드는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주식을 사기만 하면 10%씩 버는데 누가 헤지펀드에 돈을 넣겠나. 하지만 향후 시장 전망을 잘 모르겠다거나 혹은 빠질 것 같다면 헤지펀드로 돈이 몰릴 것이다. 헤지펀드 투자자들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8~10% 정도의 수익을 원한다. 올라갈 종목과 내려갈 종목을 잘 골라 믹스(혼합)해 두면 수익이 난다."

―브레인 헤지펀드의 성과는 어떠한가.

"헤지펀드는 시장이 빠지든 오르든 상관없이 기회를 포착해서 수익을 꾸준히 내는 것이 목표다. 백두(헤지펀드 상품명)는 작년 9월에 출시됐는데 3개월 결산을 해보니 12% 정도 수익이 났다. 정기예금 금리의 2배 정도인 연 8% 이상 내겠다고 약속했는데, 과하게 수익이 잘 나온 감이 있다. 올 들어 수익은 한 달간 1% 정도 되는데, 좀 더 잘할 수 있었는데 썩 만족스럽진 못하다. 처음 개시할 때 800억원 정도였고 수익이 좀 나면서 추가가 됐다. 올해는 약 150억원 정도 들어와 총 2200억원 정도 된다. 수익이 안정적으로 나면 더 많은 자금이 들어올 것 같다."

―개인들도 가입 가능한가.

"아직은 개인 자금은 받지 않고 있다. 기관 자금만 받고 있으며, 개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공모펀드는 금융 당국과 협의를 거쳐 연말쯤 출시할 계획을 갖고 있다."

―언제쯤 코스피가 안정되겠는가.

"글로벌 펀드인 뱅가드가 주식을 어느 정도 팔고 우리나라 수출 기업들이 낮아진 환율에 적응하고 기대치를 낮추면 그때쯤 한국도 전 세계 주가 흐름에 편승하지 않을까 전망한다. 그렇다면 3월 이후 정도가 아니겠나 싶다. 사실 우리나라 코스피 지수가 2000 언저리를 유지하는 것은 전 세계 돈이 굉장히 많이 풀려 저금리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기업 실적이 약화되는 시기였으면 주가가 많이 내렸을 것이다."

―장기적으로도 한국 시장은 어두운가.

"기회가 전혀 없다는 얘긴 아니다. 한국 기업들은 환율에 적응할 테고, 한국이 바닥을 찍었다 싶으면 글로벌 자금은 미친 듯 들어올 것이다. 다만 장기적으로 한국 경제가 고성장하긴 어렵다고 본다면, 집단이 아니라 선택받은 일부 기업들만 주가가 움직일 가능성이 커 보인다. 그런 의미에서 헤지펀드와 같은 상품을 주목해야 한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개인은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

"국내 주식형 펀드보다는 중국이나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같은 아세안 국가들에 주목해 보라. 중국은 성장률이 7% 중반 정도 나오면서 점점 괜찮아질 테고, 다른 아세안 국가들은 중국처럼 되기 위해 향후 10년간 고성장할 것이다. 반듯하지 않고 뭔가 허술하고 살기 불편한 곳에 투자 기회가 많은 법이다."


헤지펀드(hedge fund)

주식·채권·외환 등 대상을 가리지 않고 투자해 절대 고수익을 추구하는 펀드를 의미한다. 주가나 외환이 지나치게 고평가 혹은 저평가돼 있다고 판단되면, 신속하게 들어가 차익을 취한다. 공매도(주식을 빌려 비싸게 판 뒤 나중 주가가 떨어지면 싸게 사서 되갚아 차익을 얻는 투자기법)도 활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