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갑에야 눈뜬 영화 인생… 아직 난 청춘

영화 '시네마 천국'(감독 주세페 토르나토레)의 소년 토토는 영화로 인생을 배우고, 친구를 만듭니다. 그는 결국 영화감독이 되죠. 우리에게도 영화를 보며 인생의 크고 작은 변환점을 맞는, '토토의 순간'이 있었을 겁니다. 다양한 분야의 예술인들이 '토토의 순간'을 이야기하는 '나의 시네마 천국' 연재를 시작합니다. 첫 회는 부산국제영화제가 처음 열린 1996년부터 2010년까지 집행위원장을 지낸 김동호(76·사진) 단국대학교 영화콘텐츠전문대학원 원장입니다. 김 원장이 들려준 '시네마 천국'을 기자가 정리했습니다.

젊었을 때 영화를 별로 못 봤다. 중학교 올라갈 때 6·25가 나는 바람에 부산에 피란 가 미군에서 흘러나온 담배와 초콜릿을 팔며 살았다. 대학 가서도 가정교사를 하며 등록금을 마련하느라 졸업도 겨우 했다. 내가 접한 첫 영화는 마이클 파월과 에머릭 프레스버거가 공동 연출한 ‘분홍신’. 아마 학교 단체관람으로 봤을 것이다. 영화를 볼 여유가 없었다.

영화를 꼬박꼬박 챙겨보기 시작한 건 영화진흥공사 사장을 하면서부터다.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을 맡은 1996년부터는 영화제 준비를 위해 참석한 칸 영화제에서도 영화를 부지런히 봤다. 인생의 영화를 발견한 건, 귀가 순해진다(이순·耳順)는 60세 무렵이다. 1998년 칸 영화제에서 본 로베르토 베니니 감독의 ‘인생은 아름다워’가 바로 그것이다.

1993년 만들어진 ‘쉰들러 리스트’가 유대인 학살을 실화에 기반해 사실적으로 그려낸 영화였다면, 이 작품은 같은 소재를 갖고 다른 접근 방식을 택했다. 고통스러운 현실이 유머를 통해 역설적으로 표현되는 것이다. 주인공 귀도는 절박할 때나 괴로울 때 자기 자신과 가족을 위해 웃음을 택한다. 아내 도라, 어린 아들 조슈아와 함께 유대인 수용소에 끌려간 그는 가족의 행복을 위해 기꺼이 희극배우 노릇을 한다. 탱크를 좋아하는 아들에겐 “이 모든 건 놀이일 뿐이고 여기서 이기면 탱크를 받을 수 있다”고 속이고, 잔꾀를 부려 아내에겐 오펜바흐의 ‘호프만의 뱃노래’를 들려준다. 사형장에 가는 길에서도 귀도는 아들에게 장난기 어린 표정과 우스꽝스러운 몸동작으로 작별을 고한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들은 아버지가 죽으러 가는 그 모습에 미소를 짓는다. 충격이었다. 이 영화에서 생(生)을 살아가는 방법을 하나 발견한 것이다. ‘가장 절망적인 순간에 웃어라.’

조슈아는 결국 자신이 그렇게 좋아하던 탱크를 타고서 어머니 도라를 만난다. 귀도 덕분에 이 모자(母子)는 아마 계속 ‘아름다운 인생’을 살 수 있었을 것이다. 행복한 끝맺음이다. 여느 감독 같았으면, 비극을 택했을지도 모른다. 나와 함께 일했던 영화제 프로그래머들도 그런 비극적 결말의 영화들을 더 좋아하는 것 같았다. 현실을 고스란히 반영하는 영화가 있는가 하면, 환상으로 현실을 극복하는 것도 있다. 나에게 영화는 꿈이다. 현실의 고통을 풀고자 하는 꿈이고, 현실을 이상으로 승화하고자 하는 꿈이다. ‘인생은 아름다워’는 바로 그런 꿈을 그렸다.

쑥스러운 얘기지만, 지난해에 많은 사람의 도움을 받아 단편 영화를 한 편 만들었다. 영화제 심사위원들의 이야기를 코믹하게 다룬 작품이다. ‘인생은 아름다워’를 봤을 때부터 ‘삶의 한순간을 웃음으로 표현하는 영화를 꼭 만들어보리라’란 욕심을 가졌었다. 다행히도 관객은 내 영화를 보고 웃어주었다. 그것만으로도 일흔다섯에 이룬 감독 데뷔는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어째 그렇게 나이 들어서 감독 데뷔를 하느냐”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쩌랴. 60세에 ‘내 인생의 영화’를 발견했으니, 나의 영화 인생은 이제야 청춘을 맞은 것이나 다름없다. 그리고 인생은 여전히 아름답다.

☞‘인생은 아름다워’는…

‘이탈리아의 채플린’이라고 불리는 로베르토 베니니가 감독·주연을, 베니니의 아내 니콜레타 브라스키가 극 중에서도 그의 아내 역을 맡았다.

영화 제목은 러시아 혁명가 레온 트로츠키의 말에서 따왔다고 한다. 트로츠키는 혁명 와중에 힘들게 살다 말년에 암살됐지만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인생은 아름답다’였다.

1998년 칸 영화제 심사위원대상, 이듬해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음악상·외국어영화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