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보료·등록금… 공공성요금 카드납부 사라질 듯

최근 금융 당국의 지시로 카드사들이 아파트 관리비 신용카드 결제에 대해 별도 수수료를 물리겠다고 하자, 카드 결제 업무를 대행해온 업체가 수수료를 부담할 수 없어 서비스를 접겠다고 선언했다. 이게 현실화되면 현재 신용카드로 아파트 관리비를 납부하고 있는 전국 200만 가구가 '계좌 이체'나 '지로 납부'로 되돌아가야 하는 불편을 겪어야 한다.

금융 당국은 건강보험료, 대학 등록금, 통신 요금, 기부금 등 다른 공공성 요금에 대한 카드 수수료도 올리라고 지시해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금융 당국은 왜 이런 지시를 해서 평지풍파를 일으킨 것일까? 속을 들여다보면 복잡한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금융 당국 "공과금 수수료 형평 안 맞아"

금융 당국의 수수료율 인상 의도는 공공성 요금을 카드로 결제하는 관행을 없애거나 최소화하려는 것이다. 그동안 카드사들은 소비자들이 공공성 요금을 내는 카드를 '주력 카드'로 사용하는 경향이 있다는 점을 노려 서로 자기네 카드를 쓰도록 유도하는 경쟁을 벌여왔다. 원가 이하의 가맹점 수수료를 받고 소비자들한테는 각종 부가 서비스 공세를 퍼부었다. 이렇게 하면서 생긴 손해를 영세 상인들에게 수수료율을 높게 적용하거나 높은 카드 대출 이자를 받아 만회했다. 권대영 금융위원회 중소금융과장은 "공공성 요금을 카드로 결제한 소비자는 이익을 봤지만 그 비용은 다른 사람이 댄 것이기 때문에 수익자가 부담한다는 시장경제 원칙에 맞지 않아 고쳐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갑자기 결제 방식을 바꿔야 하는 소비자들은 불편해질 수밖에 없다. 조남희 금융소비자원 대표는 "카드 결제 자체를 전부 막으려 드는 것은 소비자의 선택을 좁히는 행정 편의적인 처사"라고 말했다.

다만 공공성 요금 중에서도 세금, 대중교통비, 전기료, 가스비 등은 이번 수수료율 인상 대상에서 제외됐다. 이런 요금은 국세법, 전기사업법 등 관련 법률에 카드로 결제할 수 있다는 조항이 들어 있기 때문에 금융 당국이 건드리지 않았다. 이 중 국세는 수수료 1%를 납세자가 부담하고 있다.

◇건강보험료·대학 등록금 카드 납부 사라질 듯

금융 당국은 지난해 12월 23일 시행된 새로운 여신금융업법에 따라 공공성 요금을 카드로 결제할 때 수수료율도 올리도록 했다. 4대 보험료, 대학 등록금, 기부금, 아파트 관리비, 통신 요금에 대해 백화점 같은 다른 대형 가맹점처럼 수수료율을 높이도록 한 것이다. 그동안 카드사들은 이런 요금에 대해선 1.5% 안팎으로 낮은 수수료율을 적용했지만 앞으로 2% 안팎으로 올려야 한다. 수수료를 한 푼도 내지 않던 아파트 관리비에 대해서도 2%쯤 부과하도록 했다. 하지만 아파트 관리비 카드 결제 대행 업무를 맡은 업체가 수수료 부과에 반발, 카드 결제 서비스가 중단될 처지에 놓였다.

건강보험료 역시 카드 결제가 사실상 막히게 될 것으로 보인다. 4대 보험료를 통합 징수하는 건강보험공단은 지난해 모두 77조원을 거뒀는데, 그중 6900억원을 카드 결제로 받았다. 건보공단은 이에 대한 가맹점 수수료 121억원을 건강보험 재정에서 꺼내 썼다. 건보공단 관계자는 "일부 카드 결제자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손해를 보면서 형평성 문제가 생기고 있다"고 말했다. 건보공단은 카드로 내는 사람이 수수료를 스스로 부담하는 쪽으로 바뀌기를 희망한다. 그렇게 될 경우 건강보험료를 카드로 결제하는 사람이 없어질 가능성이 높다.

대학 등록금은 전국 340개 대학 중 110곳에서 카드를 받고 있다. 액수로는 전체 등록금의 2.7%가량이 카드로 걷힌다. 카드 결제가 되는 대학은 특정 카드사와 협상해서 수수료율을 대폭 낮췄는데, 올해부터 수수료율을 높여야 하기 때문에 대학 측이 카드 결제를 끊을 가능성이 있다.

교육과학기술부 관계자는 "학생이 등록금을 한 번에 못 낼 형편일 경우 대학에서 제공하고 있는 등록금 무이자 분납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고, 한국장학재단의 대출금 이자가 신용카드 할부 이자보다 싸다"면서 "카드 결제 대신 이런 서비스를 활용하면 되기 때문에 큰 혼란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카드로 기부금을 받아온 일부 종교 단체는 갑작스러운 수수료 인상 통보를 받고 당황한 것으로 알려졌다. 통신사들은 수수료를 올려줄 수 없다며 버티고 있다. 통신업계는 "소송을 불사하겠다"는 입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