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3.02.07 09:41

인간문화재로 지정되는 그날을 기다리는 충북 보은 최문자 씨(46)

일자리를 찾기 위해 도시로 상경하는 젊은이들은 더 이상 낯설지 않은 풍경이다. 그 덕에 도시는 폭발적인 인구 증가로 몸살을 앓는다. 이에 대한 반작용인지 최근 비대해진 도시에서 벗어나 일감을 들고 농촌으로 유입되는 인구가 발생하고 있다. 올해로 귀촌한 지 12년이 된 최문자 씨 또한 도시에서 농촌으로 일터를 옮긴 케이스다.

‘베 짜는 아줌마’로 동네 유명인사가 되다

도시에도 우리네 전통문화를 보존하는 사람들이 있다. 삼베 짜기를 평생 업으로 삼은 최문자 씨도 그들 중 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삼베는 도시에서 다루기 까다로운 전통문화다. 대마 껍질을 쪼개 무릎에 비비고 물에 불리고 베틀에 짜는 일련의 과정은 이웃에게 폐를 끼칠 여지가 다분한 까닭이다.

“삼베를 짜려면 원료인 대마를 불리기 위해서 잿불을 피워야 하거든요. 바람이라도 부는 날엔 이웃집으로 그 재가 고스란히 날아갔죠. 저 때문에 마당에서 빨래 한 번 제대로 못 말린 분들 많을 거예요. 도시는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잖아요. 그러니 얼마나 민폐였겠어요.”

그렇다고 시골 이웃이 그녀를 마냥 반기는 것도 아니었다. 다행히 유수와 같은 세월의 흐름은 낯선 이방인에 불과했던 그녀를 어느새 동네 유명인사로 탈바꿈시켰다. 지역민과의 융화는 ‘본인 하기 나름’이라는 철학을 내비친 최 씨의 노하우는 간단했다.

“이웃에 숟가락이 몇 갠 지 훤히 꿰뚫는 곳이 농촌이에요. 한평생 보던 얼굴만 보고 살아오신 분들인데 제가 누군 줄 알고 친절하길 바라겠어요. 농사도 안 지으면서 농촌에 터를 잡은 제가 당연히 환영받을 거라고는 생각 안 했어요. 실제로 슈퍼엘 가도 ‘어서 오세요’라는 인사 한 번 못 들었고요. 다만 상대가 불친절하면 내가 먼저 친절하게 다가서면 돼요. 연세 많으신 분들은 인사만 잘해도 얼마나 예뻐하시는데요.”

텃세에 대한 편견과 오해로 귀촌을 망설인다면 손익계산부터 따지는 도시 습관부터 내려놓으라는 게 최 씨의 조언이다.

귀촌의 키포인트는 적절한 지역 선정

최 씨는 예비 귀촌인에게 자신의 마음을 솔직히 들여다보길 권한다.

“동경만으로는 생계를 이어가기 어려운 게 시골 생활이에요. 저도 처음 1~2년동안은 수입이 없어 고생했어요. 어떻게 먹고 살지 명확한 계획부터 세우는 게 순서예요.”

최 씨는 귀촌 초기자금 3,700만 원 중 땅과 집을 구입한 뒤 보일러를 들여놓는 데 꼬박 3,500만 원을 투자했다. 아무리 도시보다 물가가 낮은 농촌이라 해도 현금 200만원으로는 버티기 어려운 세월이었다.

“저처럼 일감을 가지고 내려오는 게 아니라면 더더욱 수입을 기대하기 곤란해요. 고정 수익이 없는 분들은 지역 선정부터 신중하게 고민해야 합니다.”

그녀는 비교적 도시와 가까운 지역을 추천했다. 이유인즉슨 주거지와 20~30분 거리에 상권이 형성된 경우, 아르바이트를 해서라도 최소한의 생계비는 마련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생계를 위해 도시와의 왕래가 잦아지면 귀촌을 한 이유가 무색해진다는 단점은 있다.

“무엇보다 집에만 박혀 있으면 될 일도 안 돼요. 단체에 가입해 활동도 하고 취미도 가져야 사람들과의 교류가 생겨요. 교류가 활발해지다 보면 뜻하지 않은 수입원이 발생할 수도 있고요.”

귀촌지를 선정한 후에는 그 지역의 정서를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 도나 군차원의 정책적 지원이나 교육 프로그램을 꼼꼼히 살피는 것도 정착에 도움이 된다. 유난히 겨울이 길게 느껴지는 곳이 시골인 만큼 난방시설 등의 주거환경도 반드시 체크해봐야 할 문제. 이렇듯 귀촌에는 도시 생활 못지않은 준비가 필요하다.

다양한 수입원 확보는 귀촌의 필수 조건

최문자 씨가 정착 초기 고군분투했던 원인은 아이러니하게도 그녀가 귀촌을 결심했던 이유와 동일하다. 안타깝게도 전통삼베제조는 산업의 골격을 갖추기도 전에 사양길로 접어들었다.

“삼베가 가장 많이 소요되는 분야는 수의예요. 그런데 10여 년 전부터 매장에서 화장으로 장례문화가 변하기 시작했어요. 따로 수의를 마련할 일이 없어진 거죠. 고심 끝에 각종 지역축제에 참여하기로 했어요. 집에서 삼베만 짜고 있으면 누가 어떻게 알고 일을 주겠어요. 수익을 내려면 제 이름부터 알려야겠다고 판단했죠.”

그녀는 직접 관공서를 찾아다니며 축제 참여를 요청했다. 속리산관광안내소에 두 달 동안 출근해 베 짜는 시연을 선보이기도 했다. 결국 지난 2011년에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 워크숍에 초청작가로 참가할 만큼 그녀의 노력은 속이 꽉 찬 결실을 맺었다.

“서서히 이름이 알려지고 나자 이런저런 강의 제안이 들어왔어요. 주민자치센터에도 출강했고 현재 보은여중과 속리산중학교 등 방과 후 수업도 진행 중이에요.”

주민자치센터에서의 수업은 최 씨가 앞서 언급한 것처럼 뜻하지 않은 수입원으로 이어졌다. 수강생들 중 솜씨 있는 분들의 참여로 ‘보은짚공예’라는 마을기업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마을기업의 타이틀이 삼베가 아닌 짚공예로 결정된 것은 최문자 씨의 남편 이강록씨의 영향이 컸다. 삼베를 짜기 위해서는 베틀과 몸을 연결하는 부속품이 필요한데, 특히 허리에 매는 ‘부태’는 더없이 귀중한 작업도구다. 삼베를 짜는 인구가 워낙 적다보니 부태를 판매하는 곳이 드문 것은 당연지사. 이때 등장한 흑기사가 바로 남편이었다.

“작업도 고된데 부태를 못 구해 동동거리니 안쓰러웠던 모양이에요. 어느 날부터인가 남편이 직접 베틀에 필요한 부속품을 만들어주더라고요. 그게 보은짚공예의 시초가 됐어요.”

베를 짜는 아내와 짚을 엮는 남편의 협업은 앞으로도 지속될 전망이다. 부부의 정성 어린 작품에 반해 판매 제휴를 제안하는 이들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기존 주 수입원이었던 수의 대신 삼베와 짚을 이용한 인테리어 소품을 자체 개발한 아이디어덕분이다.

“아이들의 체험학습을 위해서 한산모시 짜는 베틀을 들여놨어요. 삼베틀보다는 과정이 간략해서 훨씬 쉽거든요. 올여름 예약 인원이 벌써 120명에 달해요. 체험학습 역시 끊임없이 수입원을 찾는 과정인 셈이죠.”

인간문화재 지정을 꿈꾸며

“고향이 충남 서산인데 동네 전체가 삼베를 짜는 곳이어서 자연스레 베틀에 앉게 됐어요. 본격적으로 이 일을 시작한 건 결혼하고 2~3년이 지났을 때였는데 평생 업으로 삼겠다는 생각은 없었습니다. 부업 삼아 돈을 벌 요량이었죠.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잊혀가는 우리 전통문화의 명맥을 잇는다는 사명감이 생기더군요.”

예로부터 뛰어난 살균작용으로 주목받던 삼베. 그로 인해 지역마다 특유의 삼베 제조 방식이 번성했다. 전라도의 전포, 안동의 안동포, 충청도의 금포처럼 제각각 다른 명칭으로 불리는 연유도 여기서 비롯되었다. 최 씨가 나고 자란 충청도의 상징이자 초등학생 시절부터 몸에 익힌 금포를 널리 알리고자 하는 바람은 귀촌 지역을 충청북도 보은으로 결정한 것과 일맥상통한다.

“앞으로도 지금처럼 꾸준히 노력할 생각입니다. 교육이나 체험 관련 봉사도 지속할 예정이고요. 다만 꿈이 있다면 틀 없이 짰던 고조선 시대의 보자기를 재연하는 등 더욱 전통적인 방식을 연구하는 것이에요. 그러다 보면 인간문화재로 지정받는 날이 올 수도 있겠죠?”

베 짜는 일이 정적일 것이라는 추측은 오산이다. 날실과 씨실이 정교하게 맞물리려면 온종일 틀에 앉아 몸을 움직여야만 한다. 반면 보람과 자부심이라는 무형의 자산이 생산되는 일이기도 하다. 귀촌이란 직업과 지역 환경의 균형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몸소 보여주는 최문자 씨. 지금 이 순간에도 그녀의 베틀은 행복을 찾아 분주히 움직일 것이다.


자료제공·농림수산식품부, 농림수산식품교육문화정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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