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계 자본, 국내 저축銀·대부업 장악 급물살

일본의 투자금융회사 SBI가 국내 1위 저축은행인 현대스위스저축은행을 인수함에 따라, 대부업계처럼 저축은행 업계도 일본 자본에 먹힐 가능성이 커졌다.

일본계 자본의 국내 금융시장 공략은 1990년대 말 대부업계에서 처음 시작됐는데, 현재 대부업계는 일본계인 러시앤캐시(회사명 아프로파이낸셜대부)와 산와머니가 각각 업계 1·2위를 차지하며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일본계 자본의 저축은행 공략은 2010년부터 시작됐다. 오릭스그룹이 2010년 푸른2저축은행을 인수해 오릭스저축은행을 출범했고, 지난해엔 일본 카드·대부업체인 제이트러스트가 영업정지된 미래저축은행을 인수했다. SBI의 현대스위스 인수는 국내 금융시장 진출이 2금융권을 중심으로 꾸준히 진화하고 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다.

◇일본보다 금리 높은 한국에서 수익 노려

SBI는 재일교포 손정의씨가 만든 일본의 대표 IT기업인 소프트뱅크의 금융 계열사로서 1999년 설립됐다. 현재는 손정의씨가 지분을 다 정리했지만, 기타오 요시타카 SBI 회장은 손정의 회장과 매달 한 차례씩 만나 경영 전략을 협의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SBI는 현대스위스저축은행에 2375억원을 투자할 예정인데, 한국과 일본의 컨설팅 업체에 장기간 자문한 끝에 투자를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과감한 베팅을 두고 일각에서는 의문을 표시하기도 한다. 저축은행 업계가 대규모 구조조정으로 위축된 데다, 향후 전망도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일본 금리가 워낙 낮기 때문에 SBI가 일본에서 싼 자금을 들여와 한국에서 금융 사업을 하면 승산이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른바 '엔 캐리 트레이드(엔화를 빌려 금리가 높은 다른 국가의 통화나 자산 등에 투자하는 것)'인 셈이다.

대부업체인 산와머니는 일본 산와그룹에서 싼 금리로 자금을 끌어와 매년 1000억원 안팎의 순이익을 올리고 있는데, 이런 사업 모델이 저축은행 시장에서도 통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는 얘기다. 안종식 금융감독원 저축은행감독국장은 "당장은 국내 저축은행의 사업성이 낮아 보이지만 길게 봐서 국내 부동산 경기가 살아나면 쏠쏠한 이익을 볼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을 수 있다"고 말했다.

◇SBI의 주택담보대출 시장 공략 성공할까

SBI는 아직 국내에는 없는 주택담보대출(mortgage) 전문 금융회사를 키우겠다는 야심을 가지고 있다. 예금 수신 기능 없이 20~30년짜리 장기 주택담보대출을 전문으로 취급하는 금융회사를 말한다. SBI는 2001년 일본에서 처음으로 주택담보대출 전문 회사를 만들어 시장을 창출했다. 특히 2004년 출시한 주력 상품인 35년짜리 고정금리 주택담보대출 상품이 인기를 모으면서, 30여개 일본 모기지 회사 중 시장 점유율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일본의 변동금리 주택담보대출 금리는 연 1%대 초반인데, 이 회사는 2% 안팎의 고정금리를 내세운다. 35년이라는 시간을 감안하면 금리가 오를 수도 있기 때문에 변동금리보다 유리하다는 게 이 회사의 마케팅 포인트다. SBI는 한국에 SBI모기지란 회사를 설립해 지난해 코스피에 상장했으며, 본격적인 사업을 앞두고 시장 조사에 한창이다.

SBI는 한국 주택담보대출 시장이 12년 전 일본에서 사업을 시작할 때와 비슷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SBI모기지 관계자는 "주택 실수요자를 상대로 장기 고정금리 상품을 판매할 예정이기 때문에 집값의 거품이 빠진 요즘 같은 시점이 오히려 사업의 적기(適期)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현대스위스저축은행 4개 계열사의 각 지점은 이런 상품의 판매 채널이 될 수 있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하지만 한국에선 주택담보대출 전문 금융기업이 성공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란 시각도 있다. 미국, 일본에선 주택담보대출 채권을 바탕으로 유동화증권을 발행해 자금을 끌어모으는데, 아직 우리나라는 부동산 자산 유동화 시장이 발달하지 않아 대출 자금 조달이 용이하지 않다는 이유에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