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장단에 춤을 추리오

엄마가 시키는 대로 했더니 아빠가 야단을 친다면 어떻게 될까? 아이들은 당황스러울 것이다. 그런 일이 반복된다면 정서 불안에 빠질 수도 있다.

그런데 비슷한 일이 정부 부처와 기업 사이엔 흔하게 일어난다. A 정부 부처 말을 따랐더니 B 정부 부처가 법을 어겼다고 벌을 주는 경우이다.

최근의 대표적인 예가 약품 도매상의 '1원 입찰' 사건이다. 지난 3일 공정거래위원회는 일부 약품 도매상의 이른바 '1원 입찰'을 방해했다는 이유로 제약협회에 대해 5억원의 과징금을 매기고 검찰에 고발했다.

그간 1원 입찰은 제약업계의 큰 골칫거리였다. 종합병원은 입원 환자에게 쓰는 약을 입찰에 붙인 뒤 가장 싼값을 부르는 도매상에서 공급받는데, 이때 일부 도매상이 한 개당 단돈 1원에 공급하는 1원 입찰을 해왔다. 이렇게 하면 도매상은 당연히 손해를 본다. 그러나 종합병원 의사들은 일반 외래 환자에 대한 처방전을 쓸 때 해당 도매상이 취급하는 약품을 주로 처방했고, 여기서 나는 이익은 1원 입찰에 따른 손해를 메우고 남았다.

그런데 이 같은 관행이 시장 질서를 어지럽히고, 일부 도매상의 시장 장악 수단으로 악용된다는 지적이 나왔다. 보건복지부도 1원 입찰 근절 방안을 추진하고 나섰다.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8월 범정부 비상경제대책회의에서 '제약산업의 비전과 발전 전략' 발표를 통해 "공정·투명한 유통질서 확립을 위해 초저가 낙찰 등 불공정 관행을 근절"하겠다고 밝혔다. 그러자 제약회사들의 이익단체인 제약협회도 나섰다. 소속 제약사들로 하여금 1원 입찰을 하는 도매상에 대한 약품 공급을 중단하게 한 것이다.

이런 배경 속에서 제약사들이 1원 입찰을 그만뒀는데, 이번엔 공정위가 '병원이 싼값에 약을 살 수 있는 권리를 침해했다'고 칼을 들고 나선 것이다. 공정위는 "제도에 문제가 있더라도 이것이 법을 위반하는 핑계가 될 수는 없다"는 입장을 내놨다. 같은 정부 내에서 보건복지부와 공정위가 서로 다른 잣대를 들이댄 셈이다. 이런 문제를 '규제의 충돌'이라고 한다.

◇행정지도 따랐다가 날벼락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프랜차이즈 규제도 규제 충돌의 사례로 볼 수 있다. 지식경제부는 지난 2009년부터 프랜차이즈산업 활성화 정책을 펴왔다. 창업자들이 프랜차이즈 본부의 도움을 받으면 실패 확률을 줄일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하지만 동반성장위원회는 지난 5일 동네 빵집 반경 500m 내에 프랜차이즈 빵집을 새로 열 수 없게 하는 규제를 들고 나왔다. 동네 빵집을 살리겠다는 명목에서다. 프랜차이즈 업계 관계자는 "언제는 육성한다고 했다가, 또 이제는 성장하지 말라고 하니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할지 모르겠다"고 하소연했다.

비슷한 일이 경찰에도 있었다. 경찰은 2011년 9월 국제적 멸종위기 종인 철갑상어의 알인 캐비어가 들어간 화장품을 수입·제조한 혐의로 25개 업체를 입건했다. 그런데 당시 해당 업체들은 억울함을 호소했다. 자신들이 사용한 것은 천연 캐비어가 아닌 양식 캐비어였고, 이는 써도 괜찮다는 식품의약안전청의 지도가 있었다는 것이다. 당시 식약청도 이 같은 사실을 인정했다. 하지만 경찰은 처벌을 강행했고, 업체들은 결국 불구속 입건됐다.

◇정부 시키는 대로 했는데 담합?

규제 충돌이 가장 많이 빚어지는 것은 공정위와 다른 정부 부처 사이에서다. 지난해 7월 공정위는 은행들이 CD(양도성예금증서) 금리를 담합한 혐의가 있다며 조사에 착수했다. CD 금리는 대출 금리의 기준이 되는데, 금융사들이 대출자로부터 더 높은 대출 금리를 받기 위해 CD 금리를 서로 짜고 높게 결정했다는 것이다. 공정위의 조사 착수 소식에 대해 당시 금융당국은 펄쩍 뛰었다. 김석동 금융위원장은 "금융권이 담합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여러 차례 말했고, 실무자들은 사석에서 노골적으로 반감을 표시했다.

금융 당국이 이런 반응을 보인 것은 CD 금리가 비슷해진 배경에 대한 해석이 공정위와 달랐던 데 기인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공정위는 2011년 말부터 2012년 중반까지 다른 금리가 지속적으로 내려가던 상황에서, CD 금리만 연 3.5% 전후에서 큰 변화가 없었다는 것을 문제 삼았다. 그런데 이때는 가계부채가 사회적으로 크게 문제시되던 시기였다. 금융 당국 입장에선 가급적 새로 대출이 늘지 않도록 대출 금리가 너무 떨어지지 않게 통제할 필요가 있었다. 이에 따라 금융당국이 CD 금리의 나 홀로 고공비행을 최소한 묵인은 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국민주택채권 가격을 공동으로 결정했다가 지난해 담합 혐의로 처벌받은 증권사들도 비슷한 경우이다. 집을 사면 의무적으로 주택 가격의 3% 정도 되는 국민주택채권을 매입해야 하는데, 대부분 사람이 매입 즉시 은행 창구를 거쳐 증권사에 매각한다. 이때 증권사들은 일반인 매입 가격보다 싸게 사들였다가 조금 높게 팔아 이익을 낸다. 그런데 이때 증권사들이 은행에서 얼마에 살지를 담합했다는 이유로 공정위가 지난해 말 처벌을 내렸다.

그러나 증권사들은 이 담합의 시발점이 2004년 국토해양부의 권고였다고 항변한다. 국토해양부가 "증권사들이 중간에서 차익을 많이 본다"며, 차익을 일정 수준으로 줄이라는 권고를 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자연스레 증권사들의 매입 가격은 비슷해질 수밖에 없었고, 이후 지속적인 합의가 이뤄졌다. 국세청의 가격 지도로 소주 가격 인상률을 비슷하게 맞췄다가 과징금 처분을 받은 소주업체들도 비슷한 사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