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 수학강사, 가난한 아이들의 아버지 되다

지난달 28일 오후 4시쯤 경북 경주시 충효동의 한 건물. 3층에서 중학생 4명이 이학수(49)씨 강의를 들으며 수학문제를 풀고 있었다. 윤모(15)군이 손을 들었다. "선생님 곱셈 네 번 하는데 왜 두 개만 남아 있어요?"

윤군은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를 앓고 있다. 윤군 어머니는 8년 전 이혼하고 홀로 아들을 키웠다. 밤새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일하느라 아들을 제대로 돌보기 어려웠다. 아들 성적은 바닥이었다. 이런 윤군을 이씨가 불러 수학을 가르치고 밥도 먹이며 돌본 게 4년이 넘었다.

이씨는 한부모 가정이나 조손가정의 청소년들을 불러 모아 저녁을 먹이고 공부를 가르치는 일을 7년간 해왔다. 그를 거쳐 간 아이들이 100명이 넘는다. 그중 상당수는 대학에 진학하거나 대기업에 취직했다. 지금도 28명의 아이를 가르치고 있다. 아이들은 이씨를 '둘째 아빠'라 부른다.

 

대학에서 수학교육을 전공한 이씨는 울산에서 잘나가는 '스타 수학강사'였다. 울산의 한 백화점 문화센터에 개설된 이씨의 수학교실은 항상 만석(滿席)이었다. 미처 등록하지 못한 학부모들은 "개인과외라도 해달라"고 부탁했다. 2000년에는 한 달 수입이 700만원이었다. 백화점 근처에 수학학원을 차려 보조강사도 두고 돈을 벌었다.

잘나가던 이씨 인생이 급선회한 것은 2005년. "친구 한 명이 울산 동구에 있는 조손가정 아이들을 가르쳐 달라고 전화해왔어요. 아이들을 만나보니 제가 가르치는 아이들과 나이나 생김새는 비슷한데 한쪽은 영재 교육을 받고 있고 다른 쪽은 곱셈도 제대로 못 하는 걸 보고 충격을 받았죠."

이씨는 이때부터 자기가 사는 경주 지역 조손·한부모 가정 청소년들을 모아 저녁을 먹이고 공부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아이들을 무작정 집으로 데려와 저녁을 먹인 뒤 식탁을 치우고 책을 읽히거나 수학문제를 풀게 했다. 기본반부터 심화반까지 수준별로 나눠 가르쳤다.

소문이 퍼지자 더 많은 학생이 찾아왔다. 6개월 뒤엔 경주대 기독교동아리 방으로 쓰이던 13㎡(4평)짜리 컨테이너를 빌렸다. 취지에 공감한 대학이 선뜻 빌려줬다.

이씨는 "가난한 집에서 고생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형과 조카 생각이 났다"고 했다. 이씨의 형은 청각장애를 앓고 있다. "형이 먹고살기 바빠 교육에 신경 쓰지 못해서인지 조카는 중3 때 소년원에 들어갔고 교도소에도 다녀왔어요. 이 아이들은 조카처럼 안 되도록 교육하고 싶었습니다."

이씨는 2006년 강사를 그만두고 가난한 아이들만 가르치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때 아내(46)에게 말했다. "7년 동안 일만 하느라 너무 지쳤어. 아이들을 본격적으로 가르쳐보고 싶은데, 괜찮을까?" 아내는 침묵하다 대답했다. "빚도 생기고 형편도 어려워지겠지만 나도 돈을 벌고 있으니 굶어 죽지는 않을 거예요."

좋은 일을 하겠다고 나섰지만 순탄치만은 않았다. 아이들이 30명까지 늘어나자 컨테이너로는 운영이 불가능했다. 교회·상가 등 3곳을 아이들과 전전했다. 자녀들 반대도 만만찮았다. 딸은 이씨에게 "생전 보지 못한 아이들이 와 장난감을 던지고 방을 어지럽히니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따졌다. 하지만 이씨는 포기하지 않았다.

이씨는 작년 7월 상가 사무실에서도 쫓겨나자 전 재산 3억8000만원과 은행에서 빌린 돈 1억2000만원을 합쳐 아예 지역아동센터를 차렸다. 경주시 인가도 받았다.

새로 지은 센터에는 공부 시설만 있는 게 아니다. 아이들이 "커피를 팔아보고 싶다"고 해서 1층 한쪽에 북카페를 차렸다. 수익금은 모두 아이들을 위해 쓴다. 봉사활동도 시작했다. 이씨는 아이들과 함께 인근 하천 주위 쓰레기를 한 달에 100L씩 수거한다.

"대부분의 아이가 처음엔 '뭘 하고 싶은지' 질문받으면 '생각해보지 않았는데요'라고 대답하곤 해요. 미래를 제시할 수 있는 사람이 주위에 없었기 때문이에요. 공부뿐만 아니라 잊고 있었던 꿈을 발견할 수 있도록 돕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