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풀어야 산다, 더 눈에 띄게" 열띤 착한기업 경쟁

설 연휴 직전인 지난 4일 서울 신당동 종합사회복지관에 한화그룹 주요 최고경영자(CEO)들이 대거 나타났다. 지역 독거노인을 위해 봉사 활동을 펼치는 날이었다. 올 들어서만 그룹 차원에서 벌인 봉사 활동은 3~4차례나 된다. 이 그룹은 지난달 사회적 책임을 다한다는 의미에서 2043명의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일괄 전환했다.

SK그룹은 최근 집단경영체제에 돌입하면서, 동반성장위원회를 6개 위원회 중 하나로 신설했다. 당초 윤리위원회 산하의 소위원회로 둘 예정이었다가 막판에 독립 위원회로 승격을 결정했다. 중소 협력사 지원 같은 사회 공헌 분야가 그룹 내에서 중요해졌음을 의미한다.

새해 들어 주요 기업들이 사회 공헌을 위한 전담 조직 확대와 관련 사업 발굴에 다각적으로 나서고 있다. 대내외 경제 불안으로 대규모 투자 계획을 발표하는 것은 주저하는 상황에서도 새로운 사회 공헌 계획은 속속 확정되고 있다. 대기업에 사회적 책임을 다하라는 정치·사회적 요구가 수년 전부터 거세진 데다 박근혜 정부의 핵심 공약인 경제 민주화가 이 추세에 불을 댕겼다.

◇기업마다 아이디어 짜느라 골머리

이러한 움직임은 수출·내수 등 기업군을 가리지 않는다. 삼성그룹과 신세계그룹 이마트는 대표 직속 조직으로 사회 공헌팀을 확대 개편 중이다. 계열사 사회 공헌 조직을 CEO가 직접 챙긴다는 얘기다. 일반적으로 CEO 직속으로 신성장 사업부나 글로벌 투자부서를 두는 것을 감안하면 이례적인 일이다.

해외 활동도 활발하다. LG전자는 사회 공헌 활동에 초점을 맞춘 해외 지사를 이달 아프리카 에티오피아에 설립했다. 해외 지사가 물건을 파는 것보다 현지 주민들을 돕는 일을 먼저 하겠다고 나선 것은 드문 일이다. 낙후된 아프리카 지역에서 자립형 농촌마을을 지원하는 것이 주된 임무다.

예전과 달리 최고경영자가 관심을 갖고 채근하다 보니 실무자들은 아이디어를 짜느라 골머리를 앓고 있다. 10대 그룹에 속하는 한 임원은 "좋은 기업, 사회에 기여하는 기업이란 이미지를 만들어야 한다는 압박감이 크다"고 말했다.

모 건설사 담당자는 "윗선에서 '새로우면서도 이목을 끌 수 있는 아이템을 만들어오라'는 주문이 떨어져서 마음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고 토로했다.

실제 LG유플러스의 경우 아이디어 회의를 거쳐 '아름다운 도시 공간 창조'를 올해 새 사업으로 검토 중이다. 도로나 주택가 주변에 무질서하게 설치된 전봇대 통신선을 제거하는 활동을 말한다. 대우조선해양은 올해부터 직원 기부 활성화를 위한 '1004 기부제'를 도입하기로 결정했다. 기부를 희망한 직원 월급에서 매달 1004원을 공제한다는 내용이다.

◇사회 공헌은 비용이 아닌 투자

대부분의 전문가는 이런 변화에 대해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사고방식이 기존과 크게 바뀌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말한다. 이익을 많이 남기고 달러를 버는 것만큼이나 사회적 책임 완수가 경영 현안으로 대두한 것을 말한다.

2011년 전국경제인연합회 소속 주요 회원사 222개사의 연간 사회 공헌 비용은 3조1000억원이었다. 2002년(1조원)에 비하면 3배 수준으로 크게 증가한 수치다. 조직 내 힘이 생기다 보니 대리급 이하 젊은 직원들 사이에선 CSR(기업의 사회적 책임) 전담팀이 인기있는 부서로 떠올랐다. 일부에서는 "기업마다 정치·사회적 활동을 우선순위로 놓는 것은 사회 일각의 '재벌 때리기'에 대응하기 위한 것일 뿐"이라는 냉소론도 나온다.

하지만 대외 환경과 상관없이 사회 공헌 활동은 비즈니스의 일부가 됐다는 분석이 많다. 한국경제연구원 사회통합센터 현진권 소장은 "예전 경영진은 사회 공헌을 비용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제 투자 개념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며 "사회 공헌은 기업과 상품 이미지를 좌우하는 결정적인 변수가 됐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