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3.02.19 00:54

장성군 육군기계화학교 군인들, 주머니 털어 도시락 전달해와
"주 4회 수송작전하듯 펼치죠"

지난 8일 오전 전남 장성군 삼서면 유평리 박양례(여·81)씨의 오래된 한옥 앞에 군용 지프차 한 대가 섰다. 차에서 내린 전투복 차림 군인 2명이 삐걱대는 대문을 열고 박씨 집으로 들어섰다. 10㎡ 크기 방에서 전기담요를 펴고 앉아 있던 박씨가 군인들의 손을 잡았다. "아이고, 이렇게 매일같이 찾아오네. 고마워서 어떡하나. 고마워서 어떡하나."

"어머니, 그런 말씀 마세요. 날씨 추운데 건강은 어떠세요?" 박성운(37) 상사와 최도현(22) 하사였다. 최 하사의 손엔 보온 도시락이 들려 있었다. 박씨와 인사를 나눈 둘은 전기 상태와 보일러 난로를 점검하고 집을 나섰다.

"우리 아들들, 벌써 가는 거야?" 박씨가 마당까지 나왔다. "어머니, 저희 다음 주에 또 올게요. 건강하세요!"

장성에 있는 육군기계화학교의 군인들은 매주 네 번 '특별한 도시락'을 싼다. 부대 인근 독거노인들을 위한 '사랑의 도시락'이다. 1999년부터 배달을 시작해 15년째다. 도움을 받은 독거노인은 100여명. 지금까지 싼 도시락은 3만1000개를 넘었다.

지난 8일 육군기계화학교 소속 최도현 하사(왼쪽)와 박성운 상사가 설 연휴를 앞두고 전남 장성에 사는 독거노인에게‘사랑의 도시락’을 전달하고 있다. 1999년 시작해 지금까지 배달해온 도시락이 3만1000개가 넘는다. /김영근 기자
이날 취사병들은 흰 쌀밥과 쇠고기무국, 조기구이, 김장김치, 우엉무침을 담은 도시락 10여개를 준비했다. 소설종(21) 일병은 "음식이 만들어지면 가장 먼저 도시락부터 챙긴다"면서 "친할아버지·할머니가 드신다는 마음으로 정성껏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랑의 도시락'은 1999년 손재곤(62) 주임원사(당시)의 건의로 시작됐다. '부대 인근에 형편이 어려운 어르신들이 많이 살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손 원사는 "우리가 조금씩 정성을 모아 따뜻한 도시락이라도 한 개씩 배달해드리는 것이 어떻겠냐"고 제의했다. "1000원에서 1만원까지 간부들이 십시일반 매주 돈을 모읍니다. 적은 돈이지만, 어르신들을 도울 수 있다는 게 기쁩니다." 서진석(52) 주임원사의 말이다.

이들은 주민들의 점심시간에 맞춰 오전 11시 30분이면 부대를 나선다. 독거노인 10여명의 집을 모두 방문하는 데는 1시간 30분쯤 걸린다. 왕복 30㎞ 거리다. 박성운 상사는 "습관적으로 배달하는 것이 아니라, '수송작전'을 한다는 마음가짐으로 도시락을 나른다"고 말했다. 최도현 하사는 "배달을 마치고 차를 타고 떠날 때마다 '우리 군인 아들 또 오라'며 눈앞에서 차가 사라질 때까지 지켜보는 어르신들을 볼 때마다 마음이 무겁다"며 "연로하신 어르신들이 지병으로 세상을 떠나서 더는 배달을 갈 수 없을 때가 가장 슬프다"고 말했다.

"몸이 불편해서 끼니 먹기도 힘든데, 찾아와 챙겨주니 든든해. 군대 애기들이 아픈지 따뜻한지 물어보니 외롭지 않아." 2000년부터 14년째 '군인 아들'의 도시락 선물을 받고 있는 김순님(여·87)씨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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