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뷰] 도청·사채·살인·불륜… 진짜 나쁜 사람은 누구?

'미모의 여대생' 진아가 죽었다. 그의 죽음에 네 명의 남자가 분노한다. 진아의 옆집에 살면서 그를 도청하던 경찰 정훈(이제훈), 돈으로 진아를 나락으로 내몬 사채업자 명록(조진웅), 끝난 사랑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스토킹하던 옛 애인 현수(김태훈), 아내 모르게 불륜을 저지르던 대학교수 수택(곽도원). 도청, 고리대금업, 살인, 불륜 등의 죄를 저지른 이들은 모두 "나는 잘못한 게 없다"며 다른 사람에게 화를 낸다. 네 남자의 욕망은 죄책감을 상쇄시키고, 좌절된 욕망은 분노로 치환된다.

박명랑 감독의 데뷔작인 '분노의 윤리학'은 살인사건의 내막을 밝히는 스릴러가 아니다. 살인자보다는 '나쁜 사람'을 찾는 데 중점을 준다. 욕망과 권력으로 얽힌 캐릭터들이 펼치는 부조리극이자 블랙코미디다.

싸우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어느 누구의 편을 들어주기 힘들다. 저마다 상황이 있고, 정의가 있는 법이다. 이 영화에서도 마찬가지다. 누가 더 나쁜지 우열을 가리기 힘든 악인들은 저마다 자신이 옳다고 주장하는데 결말은 이상하게 파국으로 치닫는다. 이 아이러니에 웃음이 나오는가? 우리가 사는 세상의 윤리학과 많이 닮아서 편히 웃을 수만은 없을 것이다.

네 남자가 각각 진아와 어떤 관계를 맺었는지, 이들끼리는 어떻게 만나는지 퍼즐을 맞추듯 보여주는 방식은 '나의 욕망'을 주장하는 이들의 입장을 전달하는 데 꽤 효과적이긴 하다. 아쉬운 건 배우들의 호연에도 후반부로 갈수록 영화의 힘이 떨어진다는 것. 특히 정훈과 명록, 현수가 한 장소에 모이게 되는 클라이맥스는 긴장감을 놓치고 만다. '내가 분노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서로에게 악을 쓰지만 이게 분노를 효과적으로 표현하는 최고의 방법은 아닐 것이다.

매끄럽게 만들어진 영화는 아니다. 하지만 관객을 불러모으기 위해 만들어진 '착한 척하는 영화'나 '멋진 척하는 영화'들 속에서 흥행 공식에 살짝 비켜난 이 작품을 마주한 건 반가운 일이다. 21일 개봉. 청소년 관람불가.

[이것이 포인트]

#대사 "희로애락 중 으뜸이 뭔지 알아? 당연히 분노지."(여대생이 죽어 빌려준 돈을 받지 못하게 된 사채업자 명록이 하는 말)

#장면 경찰 정훈과 옛 애인 현수가 전화 통화를 하다 서로에게 욕지거리를 하는 장면. 뒤틀린 욕망을 가진 남자들의 뻔뻔함을 보여준다.

#이런 분 보세요 분노 때문에 자주 혈압이 오르는 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