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저당 소송, '설정비 부담' 설명 여부가 승패 갈라

주택 등을 담보로 금융회사에서 돈을 빌릴 때 물었던 근저당권 설정비를 돌려달라며 대출자들이 낸 소송에 대한 법원 판결이 엎치락뒤치락 엇갈리고 있다.

작년 9월 이후 판결 내용이 확인된 6건 정도의 1심 판결에서 4건은 금융회사가 승소했고, 2건은 대출자들이 이겼다. 아직 상급심인 2심 판결이 난 소송이 없어 어느 쪽이 유리하다고 말할 수 있는 단계는 아니지만, 양측의 법정 공방이 치열하게 진행되고 있다.

근저당권 설정비 반환 소송은 금융권 전체를 상대로 한 유례없는 대규모 집단 소송이다. 소송 참가자가 5만명을 넘는다. 공정거래위원회 산하 한국소비자원이 작년 7월 4만2000명의 소송 참가자를 모집해 1500개 금융회사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 시민단체인 금융소비자연맹이 2011년 9월부터 1만여명을 모아 제기한 소송 등이 대표적이다. 근저당 설정비는 부동산 담보 대출을 받을 때 발생하는 부대 비용으로 통상 1억원 대출에 60만원 안팎이다.

◇같은 법원에서 하루 새 정반대의 판결이 나오기도

21일 서울중앙지법 민사16부는 대출자 68명이 신한은행을 상대로 낸 소송과 기업은행을 상대로 154명이 제기한 소송 등 2건을 원고 패소(은행 승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은행이 대출자에게 설정비 부담에 대해 설명하고, 선택할 수 있도록 했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하루 전인 지난 20일 같은 법원 민사15단독 엄상문 판사는 정반대의 판결을 내렸다. 장모씨가 신한은행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장씨의 손을 들어줬다. 은행이 부당이득을 취했으니 장씨에게 설정비를 돌려줘야 한다고 밝혔다. 작년 9월 경기도의 한 신협을 상대로 한 소송에서 대출자가 승소한 적이 있지만, 은행을 상대로 대출자가 이긴 것은 처음이라 주목을 받았다.

이보다 앞서 작년 12월에는 서울중앙지법 민사37부가 국민은행에서 대출받은 270여명이 낸 소송에서 은행의 승소를 판결했다. 같은 날 민사33부도 기업은행, 하나은행, 농협 등 47개 금융기관을 상대로 100명이 낸 같은 취지의 소송을 모두 기각했다.

◇금융회사와 대출자 간 개별적인 '약정(계약)' 유무가 쟁점

그동안의 판결을 살펴보면 "금융회사와 대출자 간에 설정비 부담에 대한 개별적인 약정(계약)이 있었느냐"에 대한 재판부의 판단에 따라 승패가 갈리고 있다. 재판부가 개별적인 약정이 있었다고 판단할 경우 은행 승소, 그렇지 않았다고 보는 경우 대출자가 승소하는 것이다.

금융회사들이 승소한 경우는 "금융회사가 대출자에게 설정비 부담에 대해 제대로 설명하고 선택권을 보장해 (대출자가 부담하는) 약정을 맺었다"는 결론이 내려진 경우다. 반면 대출자가 승소한 대표적인 소송인 지난 20일 서울중앙지법 민사15단독 판결은 "설정비 부담과 관련해 은행과 장씨 간에 아무런 합의(약정)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장씨의 대출계약서 등에 설정비를 누가 부담할지에 대해 아무런 표시가 없었기 때문이다.

금융회사 대출의 경우 표준약관을 근거로 하는데 이번 소송에서 유달리 금융회사와 대출자 간의 개별적인 약정의 유무를 따지는 것은 기존 약관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대법원은 지난 2011년 8월 "(설정비 관련) 약관이 부당하다"고 판결했다.

법원 관계자는 "설정비 부담에 대한 개별적인 설명과 협상 등을 거친 약정이 없다면, 대법원이 금융회사에 일방적으로 유리해서 부당하다고 판정을 내린 약관을 근거로 해서 설정비를 대출자에게 떠넘긴 것이니 부당 이득이라는 결론이 내려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10년 전 대출까지 소송 대상 되나…소멸시효도 쟁점 될 듯

또 하나의 쟁점은 소멸시효(소송을 낼 수 있는 기간)의 문제다. 한국소비자원은 지난해 2월 집단소송 참가자를 모집하면서, 2003년 1월부터 2011년 6월까지 근저당 설정비를 내고 대출을 받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삼았다. 10년 전에 대출받으면서 낸 설정비도 반환 대상이 된다는 것이다. 소비자원 관계자는 "설정비 반환의 경우 소멸시효가 10년인 일반 채권에 해당되는 것이 분명하다. 대출 시점부터 10년 이내에 소송을 내면 된다"고 말했다. '

그러나 이광진 은행연합회 변호사는 "대출도 일종의 상거래이니 상법상 소멸시효인 5년을 적용해야 한다. 대출받은 지 5년 이내의 경우만 소송을 낼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