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서기 어려운 주유소의 변신

주유소들이 생존을 위한 변신에 나섰다. 2년 연속 문을 닫는 주유소가 전국적으로 연 100개에 이르면서 위기감이 커진 탓이다.

요즘 주유소는 전자(電子)제품 판매점, 세탁소, 커피 전문점 등 이질적인 업종들과 콜라보레이션(협업)이 활발하다. 기름만 팔아서는 도저히 수익을 맞추기 힘들어지자 복합 주유소로 변신하는 것이다. 과거에는 주유소 한 귀퉁이에 조그만 편의점·패스트푸드점이 들어서는 수준이었으나 이제는 본업과 부업이 바뀔 정도로 대대적인 변화가 일고 있다.

◇주유소와 전자제품 매장의 결합

작년 12월 18일 전북 전주시 완산구 효자동. 국내 최초로 주유소와 전자제품 판매점이 결합한 'SK 서곡주유소'가 문을 열었다. 길가에 덩그러니 주유소만 있던 자리는 6개월의 공사 끝에 2층 건물로 바뀌었다. 2층에는 큼지막하게 'LG 베스트샵'이라는 전자제품 판매점 간판이 내걸렸다.

SK에너지 측이 주유소 리모델링을 검토하다가 LG전자 측에 협업을 제안했다. 그 대신 주유소 공간이 좁아지며 주유기는 6개에서 3개로 줄었다. 주유 노즐도 18개에서 12개로 감소했다.

두 달여가 지난 지금 결과는 성공적으로 평가된다. 기름 판매량은 리모델링 전 수준을 회복했다. 전자 매장과 공동 판촉을 벌이는 등 시너지가 나타난 덕이다. 최용석 서곡주유소 사장은 "이 추세로 가면 매장 임대료 수입은 물론이고 주유소 매출도 예전보다 두 배 이상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다른 정유사도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에쓰오일은 서울 여의도 국회 앞 경일주유소에 국내 최초로 세탁소를 입점시켰다. 고객 응대를 전담하는 서비스 매니저도 뒀다. 이 세탁소는 24시간 운영해 일과 시간에 짬을 내기 어려운 직장인들에게 인기가 높다. 경북 경산의 GS칼텍스 늘푸른주유소는 파리바게뜨 빵집을 유치했다. 경남 통영의 현대오일뱅크 삼정주유소는 중국 음식점과 같이 있다.

다른 업종과 결합한 복합 주유소는 점점 늘고 있다. 업계 1위 SK는 2008년 말 2개에서 지난해 1년 동안에만 12개가 늘어 모두 24개가 됐다. 올 하반기엔 부산 해운대에 카페와 생활용품점, 패스트푸드 가게 등을 결합한 대형 주유소를 개장할 계획이다.

◇입지 특성에 맞는 결합 시도해야

정유업체들이 사활을 건 변신에 나서는 것은 주유소 수익성이 갈수록 떨어지기 때문이다. 한국주유소협회에 따르면 주유소의 평균 영업이익률은 1995년 2.5%에서 2011년 0.4%까지 떨어졌다. SK에너지 관계자는 "어떤 업종을 결합하는 것이 도움이 될지 입지 특성을 고려해 다양한 복합 주유소를 실험하고 있다"며 "먼저 직영점에서 경험을 쌓아 자영 주유소까지 확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소비자 입장에서도 반길 일이라는 진단이 나온다. 근처 주유소가 장사가 안 돼 사라지는 것보다 진화를 통해 살아남는 것이 편리하기 때문이다. 김형건 대구대 교수(경제학)는 "일본 도쿄(東京) 시내 주유소들이 치솟는 땅값과 경영 악화를 못 이기고 대거 문을 닫은 사례가 있다"며 "서울 등 도심 지역에서 주유소가 밀려나가는 상황에서 정유사와 업주들이 자구책을 찾는 것은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말했다.

치밀한 사전 검토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한 정유업계 관계자는 "2000년대 초 SK와 GS가 자체 편의점 체인을 전국적으로 보급하려다가 실패한 적이 있다"며 "결합 업종 선정은 지역 여건 등을 고려해 신중히 결정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