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이현의 히어로&히로인] [48] 거짓말은 열망을 좌절로 바꾼다

영국 저술가 이언 레슬리의 저서 '타고난 거짓말쟁이들'에 따르면 아이들은 언어를 배우는 시점부터 거짓말을 하기 시작한다. 설탕을 몰래 훔쳐 먹고 나서 시치미를 떼는 식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이 사회가 '진실에 의해 지속되는 공동체'임을 깨닫고 거짓말하기를 멈춘다고 한다. 그렇다면 숨 쉬는 것보다 자연스럽게 거짓말을 하는 사람은 어떻게 된 걸까?

영화 '캐치 미 이프 유 캔(Catch Me If You Can)'의 프랭크(리어나도 디캐프리오)는 천부적인 거짓말쟁이다. 손쉽게 남을 속이고 이득을 취한다. 전학 온 고등학교에서 따돌림을 받게 되자 순간적으로 임시교사라는 거짓말을 하게 되는 게 시작이다. 아주 자연스럽게 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는 사실에 가장 놀란 건 본인 자신이다. 거짓말이라는 특수 재능은 그렇게 개발된다.

열일곱 살에 학교 밖으로 나온 프랭크는 파일럿을 사칭한다. 특유의 멋진 제복이 좌중의 시선을 사로잡는 것에 힌트를 얻어서였다. 그건 곧 제복만 구해 입으면 다른 사람들의 믿음을 살 수 있다는 뜻이었다. 과연 사람들은 그의 내면보다 그의 제복을 더 믿는다.

거짓말은 필연적으로 다른 거짓말을 낳는 법이다. 어느새 그는 미국 전역의 50개 주를 돌며 은행에서 140만달러를 횡령한 희대의 사기범이 되어 있다. 끊임없이 새로 생성되는 거짓말들은 저희끼리 맞물리며 눈덩이처럼 점점 커다랗게 불어난다. 눈덩이가 굴러가는 그 엄청난 속도를 아무도 멈추지 못한다.

거짓말쟁이의 비극은 온 세상을 속여도 딱 한 사람, 자신만은 속이지 못한다는 데 있다. 필사적으로 자신을 뒤쫓는 FBI 요원 칼(톰 행크스)을 귀신같이 따돌리면서도 프랭크는 크리스마스 때면 칼에게 전화를 건다. 진짜와 가짜는 어느 순간 뒤섞이고, 그는 절대 잡히고 싶지 않지만 한편으론 누군가 자신을 꼭 잡아주기를 바라는 이중적 고뇌에 시달린다.

어떤 아이들은 왜 나이가 들어도 거짓말을 멈추지 못할까? 좌절된 현실을 어쩌지 못해서는 아닐까? 그렇게 해서라도 무력한 세상에 대한 작은 통제력을 갖고 싶어서 말이다. 프랭크의 거짓말 역시 그 깊은 연원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돈을 많이 벌어 깨져버린 가정을 복원하고 싶다는 열망이 숨어 있다. 그러나 돈은 벌었지만 그때의 '진짜 프랭크'는 이제 아무 데도 없다. 거짓말이라는 증상의 슬픈 결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