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의 정령 매화. 혹독한 추위를 이기고 봄이 되면 가장 먼저 눈을 뜨는 이 야무진 꽃을 선인들은 글로, 그림으로 앞다투어 칭송했다. 옛 정취가 듬뿍 깃든 민화 속에서 매화를 만나보자.
뜰을 거니니 달이 나를 따라오네
매화꽃 언저리를 몇 번이나 서성이며 돌았던고
밤 깊도록 오래 앉아 일어설 줄을 몰랐더니
향기는 옷깃 가득 달그림자는 몸에 가득.
16세기 조선의 지성 퇴계 이황의 ‘도산월야영매(陶山月夜詠梅)’의 한 부분이다. 생전 매화를 소재로 90여 수 이상의 시를 지은 이황의 매화 사랑은 유독 각별했다. 매화를 ‘매형(梅兄)’ 또는 ‘매군(梅君)’으로 높여 칭했음은 물론, 임종 직전 가솔들에게 유언으로 남긴 말이 “저 매화에 물을 주어라”였다고 하니 그 정도를 알 만하다.
이렇듯 조선시대 양반문화 속에서 매화는 추앙 받는 꽃이었다. 선비의 고결한 성품을 상징한 이 꽃이 정통 회화의 조류를 모방한 민화(民畵)의 단골손님이 된 것은 어쩌면 당연지사. “알다시피 조선은 유교적 전통이 강한 양반사회였습니다. 후기 영·정조 시대로 접어들면서 대중문화가 태동한 가운데 민화가 생겨났지요. 당시 민화의 바탕에는 양반선호사상이 두텁게 깔려 있었어요. 양반의 향유물이던 사군자를 그리면서 ‘양반 흉내’를 내고 싶었던 것입니다.” 가회민화박물관 윤열수 관장의 설명이다. 이는 우리가 민화 속에서 매화를 쉽게 만날 수 있는 이유다.
화려한 색감의 재기 넘치는 민화
옛 도자기나 서적은 일찍부터 수집가들 사이에서 활발히 거래된 데 비해 민화는 몇몇 애호가의 전유물로 인식된 감이 없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민화는 부쩍 미술 애호가들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윤 관장은 “예전에는 양반의 수묵화를 높이 샀지만 요즘은 화려한 색감의 재기 넘치는 민화가 인기”라고 설명한다.
그림의 자산 가치도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다. 통상 1폭당 100~200만원 선에 거래되는 민화는 여타 미술품과 마찬가지로 연대와 채색, 필력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가격을 매긴다. 물론 아직까지 일반인의 매매가 활발하지 않기 때문에 완전한 ‘재테크’ 개념으로 보기는 힘들다. 윤 관장은 말한다. “돈보다는 취미로 접근해야 합니다. 재테크로서는 그다지 의미가 없지요. 물론 주식보다는 확실히 낫다고 생각합니다. 고서화는 값이 오르면 올랐지 내려갈 일은 없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