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를 내다본 도시 공간 디자인은 물리적인 개발에 초점을 맞춘 건축에서 탈피, 도시건축에 문화코드를 적용해 경제적 가치를 창출해야 한다는 이병주 대표. 우리 문화의 종자를 발굴해 우리만의 언어, 빛, 형태를 개발하고 이를 건축에 접목해 새로운 도시공간을 만들어내고자 하는 그를 만났다.
쿵쾅쿵쾅…. 세계 어느 도시를 가든 공사 중인 현장은 늘 있게 마련이다. 사람이 만들어낸 도시 속에서 사람들은 끊임없이 부수고, 보수하고, 새로 짓는다. 서울 역시 예외는 아니어서 레고 블록 만들듯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운 건물이 도심 속 건물 틈을 비집고 들어선다. 도심의 마천루는 우리나라 경제성장의 상징이자 지표로 자부심을 더해주던 때가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도심 한가운데 서서 주변을 한 번 바라보라. 어떤 건물은 이만저만 눈에 거슬리는 것이 아니어서 그 공간 속에 저 건물이 없었으면, 하는 생각이 드는 것도 적잖이 눈에 띈다. 레고 블록이라면 해체해서 다시 조립이라도 하겠지만 건축물은 그렇게 쉽게 바꿀 수 있는 게 아니다 보니 부조화 속 공간에서 살아가는 도시인들의 피로감은 더해가기만 한다.
이러한 때, 21.5세기를 내다본 도시 공간 디자인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이가 있다. 플래닝코리아 이병주 대표는 물리적인 개발에 초점을 맞춘 건축에서 탈피, 도시건축에 문화코드를 적용해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는 인물이다.
“디자인이라고 하면 보기 좋게 만드는 치장술이라고 치부하는 경우가 많다. 미학적인 가치를 추구하고 시각적인 아름다움을 실현하고자 하는 작업임에는 틀림없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니다. 근본적으로 디자인은 독자적인 것이 아니라 사회와 그 사회 속 구성원들의 문화, 감성, 사고방식, 가치관 등과 밀접한 관련을 갖고 있는 것. 말하자면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에 대한 설계라고 할 수 있다.”
문화를 통한 삶의 질 향상
플래닝코리아 이병주 대표. 그는 창조성과 상상력이 풍부한 인물이다. 머리 속에 떠오르는 것이 있을 때마다 글과 그림으로 기록한 그의 드로잉북을 보면 마치 공상과학물 같다. 어떻게 이런 다양하고 창의적인 생각을 할 수 있을까 싶은데, 더 놀라운 것은 그런 상상을 현실화 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의 대표작 중 하나가 바로 강남역 인근에 위치한 주상복합오피스 건물 ‘부띠크모나코’다. 2008년 완공된 이 건물은 도식화된 양식과 차별화되는 새로운 스타일로 세간의 이목을 끌었다. 기존의 고층아파트나 주상복합빌딩의 경우 소비자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평형대 밖에 없었다. 실내 공간은 모두 동일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상 27층, 지하 5층 규모의 부띠크모나코는 172가구에 49가지의 서로 다른 형태를 가진 공간으로 구성되었다. 언젠가 그가 스케치했던 구름다리는 방과 방을 잇는 작은 교각을 만들어 구현했고, 개별 실내 정원을 만들어 ‘정원은 주택에만 있는 것’이라는 고정 관념을 깨기도 했다.
현재는 오름, 용암동굴, 곶자왈 등 제주 고유의 자연을 모티브로 한 도시 개발 프로젝트 ‘제주 에어레스트 시티’를 진행 중이다. 휴양과 비즈니스가 결합된 새로운 상품 모듈을 통한 ‘정주자족 시스템’을 활성화해 세계 최초의 휴양형 창조경제도시를 만들 계획이다.
“공간을 소비하는 양상이 바뀌어 가고 있다. 이전에는 부동산을 구입할 때 자산 가치를 기준으로 선택했다면 21세기에는 문화적 대한 가치를 인식하기 시작한 것이다. 어느 지역에 사는지, 몇 평형인지가 중요했다면 이제는 어떤 집인지, 어떤 공간인지 등 문화적 가치를 따지게 된 것인데, 공급자들은 수요자들의 욕구를 충분히 읽어내고 있는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본다. 형성되어 있는 도시의 모습,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감성이나 라이프스타일을 고려하지 않은 채 기존의 관점으로만 바라보고, 획일화된 사고에서 벗어나 미래 도시에 대한 큰 그림을 그려봐야 한다.”
우리 문화의 종자를 파종해야
이병주 대표는 브랜드 디자이너로서 활발히 활동했다. ‘해지스’, ‘닥스’, ‘톰보이’, ‘파크뷰’, ‘SK뷰’ 등 들으면 알만한 굵직한 브랜드를 만들고 리뉴얼하는 작업을 하면서 그 분야에서 인정을 받았다. 그러나 그의 꿈은 도시를 디자인 하는 것. 그래서 통합부동산상품개발PM회사 플래닝코리아를 설립해 건물의 콘셉트 구상, 설계, 마케팅 등을 총괄하는 CPM(Creative Project Management) 분야를 개척하고 있다.
“5000년의 역사를 가진 우리 민족이 창출한 문화는 상당하다. 그러나 현재 우리의 생활 속에 고유의 문화적 종자는 많이 퇴색되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문화적 단절을 겪기도 하고, 해방 이후에는 경제개발 논리를 앞세워 서양 문물을 따라가고 모방하는데 급급하다보니 정체성이 부족하고 다소 혼재된 모습을 갖게 되지 않았나 싶다. 미래의 화두는 우리 문화의 종자를 개발해서 산업으로 육성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외국과 다른 우리만의 유전인자를 발굴해 새로운 문화·예술·산업 유전인자로 발전시켜야 한다.”
이 대표는 인터넷과 SNS로 전 세계가 소통하고 연결되는 이 시대에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 요소는 전통과 고유문화에 있다고 말한다. 부동산 개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 그러나 세계적인 흐름을 보면 후발 도시는 앞선 도시의 개발 형식과 형태를 따라가는 양상을 보인다. 두바이는 뉴욕을 모방하고, 우리는 두바이를 모방해서 간척 사업을 벌이고…. 부동산 개발을 할 때 이제 더 이상 경제적인 측면만 따질 것이 아니라 문화적인 측면을 고려해야 한다.
“도시 재생이나 개발 사업 등은 사회설치예술과 다름없다. 살아가는 공간을 어떻게 디자인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불가피하다. 대대로 배양해온 고유의 유전인자를 건설에 접목시켰을 때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명품 건축으로 발돋움할 수 있다. 우리 문화를 근간으로 하는 기류로 우리만의 언어, 빛, 형태를 개발하고 이를 도시 건축에 접목해 새로운 도시공간을 만들어내고자 한다.”
☞ 이병주 대표는 광고업계에서 직장 생활을 시작해 ‘해지스’, ‘닥스’, ‘인디안’, ‘톰보이’, ‘파크뷰’, ‘SK뷰’ 등의 브랜드를 만들거나 리뉴얼했다. 2000년 통합부동산상품개발PM회사인 플래닝코리아를 설립한 후 청담동의 복합문화공간 ‘네이처 포엠’, 주상복합 오피스 건물 ‘부띠크모나코’ 등을 기획했으며, 현재 휴양형 창조경제도시 ‘제주 에어레스트 시티’ 개발을 진행 중이다. 사회설치예술가로서 창의적 사고와 건축콘셉트의 뿌리가 담긴 ‘알레르기’(1997), ‘근접조우’(1999), ‘東流 2006+의·식·주 트렌드’(2003), ‘백남준 미디어 다리’(2010), ‘기류채집도’(2011), ‘생각의 종자’(2011) 등의 전시회를 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