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동현의 모던 타임스] [44] 천대받던 사람들도 '만세' 열창 앞장섰던 3·1 운동

"우리는 이에 조선이 독립국임과 조선인이 자주민임을 선언한다. … 누구나 자유와 평등을 누려야 한다는 인류적 양심이 드러남으로 말미암아…" 1919년 3월 1일 서울 탑골공원에서 낭독된 '독립선언서'는 한민족이라는 잔잔한 연못에 던져진 한 알의 돌멩이였다. 작은 동심원의 궤적들은 점점 큰 원을 그리며 멀리멀리 퍼져 나갔다. 민족 구성원 하나하나가 자유와 평등을 누리는 공화국을 세우고 싶은 열망이 모두의 가슴 깊이 끓어넘쳤던 그때, '누구라도 꺾을 수 있는 길가의 버들과 담장 밑의 꽃'이라는 뜻의 '노류장화(路柳墻花)'라 불리며 우리 사회 가장 낮은 곳에서 천대받던 기생들도 그들 자신이 주인공이 되는 국민국가 세우기를 열망하는 민족의 한 사람으로 우뚝 섰다.

3월 29일 경기도 수원 자혜(慈惠)병원으로 정기 검진을 받으러 가던 수원 권번(券番) 소속 기생 30여명은 '대한 독립 만세'를 소리 높여 외쳤다. "수원 기생 김향화는 태극기를 들고 여러 기생을 데리고 경찰서 문 앞에서 만세를 불렀다. …재판부는 김향화에게 징역 6개월 형을 언도하였는데 방청석에 사람이 가득하였더라." 1919년 6월 20일자 매일신보가 보도한 바와 같이 기생들의 만세 시위를 이끈 김향화(金香花)는 4월 1일 충청도 천안 아우내 장터 시위를 주동한 유관순과 함께 경성(서울) 서대문형무소 8호 감방에서 모진 수형 생활의 고통을 함께 나누었다. 수원 기생들만이 아니었다. 진주·해주·안성·통영의 기생들도 3·1운동 만세 대열의 선두에 섰던 각성된 주체였다.

'제1조, 대한민국은 민주공화제로 함. 제3조, 대한민국의 인민은 남녀·귀천 및 빈부의 계급이 없고 일체 평등함.'3·1운동의 성과로 1919년 4월 11일 중국 상해에서 만들어진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헌법인 임시헌장(憲章)은 3·1운동을 추동한 자유·민주·평등의 정신을 우리 역사에 깊이 새겼다. 3·1운동 정신의 계승을 명기한 1948년 제헌헌법과 현행 헌법의 전문(前文)이 웅변하듯 오늘 우리가 누리고 있는 자유와 번영의 첫 디딤돌을 놓아준 선열(先烈)들의 정신은 여전히 우리의 앞길을 밝히는 '오래된 미래'로 환히 빛난다. 3·1운동이 들판의 불길처럼 타오르던 그때 우리 민족은 하나였음을 기억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