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값 7개월래 최저… 큰손들 추가 하락에 베팅

회사원 이정은(40)씨는 작년 8월부터 한 시중은행의 금 통장에 조금씩 금을 사 모았다. 금 실물을 보관할 필요 없이 통장에 금 잔액이 표시되는 상품이다. 이씨는 적립식으로 꾸준히 약 3000달러어치의 금을 샀다. 그런데 26일 통장을 확인해 보니 그동안 수익률이 -8.9%였다. 이씨는 "금 강세장이 끝날 수 있다는 얘기가 들려 적립을 중단하고 추이를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국제 금값이 7개월 만에 최저 수준으로 내려앉으면서 금(金) 투자자들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금값이 좀 더 하락할 것이라는 의견이 있는가 하면 이제 바닥을 쳤다는 의견도 있어 혼란스럽다.

지난 25일 뉴욕 상업거래소에서 국제 금값은 온스당 1586달러에 마감했다. 전날보다는 13.8달러 오른 것이지만, 7개월 전 수준에 불과하다. 최근 1년간 최고점이었던 작년 10월 4일의 1794.1달러와 비교하면 11.6% 하락했다. 금에 투자하는 펀드에 돈을 넣은 투자자들도 마이너스 수익률을 기록하고 있다. 26일 현재 삼성KODEX골드선물특별자산상장지수투자신탁(금-파생형)의 경우 1년 수익률이 -5.69%, KB스타골드특별자산투자신탁(금-파생형)A는 1년 수익률이 -6.0%이다.

◇국제 금값 왜 하락하나?

국제 금값이 하락하는 가장 큰 이유는 국제 금융시장이 유럽 재정위기에서 벗어나 안정을 찾고 있기 때문이다. 금은 안전자산의 대명사이다. 시장이 불안해지면 투자자들이 많이 찾지만, 시장이 안정을 찾으면 금에서 벗어나 주식 같은 위험자산으로 이동한다. LG경제연구원에 따르면 국제 금융시장 투자자들의 불안감을 재는 척도로 사용되는 시카고 옵션거래소의 변동성지수는 국제 금값이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던 2011년 8월 35.4였지만, 최근엔 12 수준으로 떨어졌다. 이는 변동성지수의 20년 평균치인 20을 크게 밑도는 것이다.

금 수요도 줄어들고 있다. 세계 금위원회에 따르면 작년 한 해 동안 금 판매량은 4405t으로 전년보다 4% 줄었다. 특히 세계 최대의 금 수요국인 인도의 금 수요가 864t으로 전년보다 12% 감소했다. 인도 정부가 금 수입으로 인해 경상수지 적자가 확대되자 금 관세를 높여서 수입 규제를 강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적인 투자자 조지 소로스는 작년 3분기까지만 해도 금 투자를 늘렸지만, 작년 4분기에는 금 ETF(상장지수펀드) 보유액을 절반으로 축소했다.

◇앞으로 전망은?

국제 금값에 대해서는 비관적인 전망과 낙관적인 전망이 섞여 있다. 아직 방향성을 못 잡고 있다는 것이다.

'상품 투자의 귀재'로 불리는 짐 로저스는 지난 19일 미국의 CNBC 방송에 출연, "대부분의 자산은 매년 혹은 2년마다 30% 정도의 가격 조정(하락)을 받는다"며 "그렇지만 금 시장은 지난 12년 동안 한 번밖에 조정을 받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역사적인 관점에서 보면 금 가격의 상당한 조정이 임박했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시티그룹도 15일 "금 시장은 매우 긴 주기를 갖고 있기 때문에 역사적으로 볼 때 상당히 오랫동안 겨울잠에 빠져들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하지만 LG경제연구원에 따르면 BNP파리바, 바클레이즈 등 다른 투자은행의 올해 연말 국제 금값 전망은 온스당 1650~1850달러이다. 1586달러인 지금보다는 오를 것으로 내다보는 것이다.

LG경제연구원은 26일 낸 보고서에서 3가지 이유로 금값이 대세 하락을 하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첫째로 금 생산의 감소가 예상된다. 금 생산국들은 최근에 생산량을 줄이고 있다. 둘째로 장신구 및 중앙은행 보유용 금 수요가 계속되고 있다. 이는 장기적으로 금값을 지탱해 주는 힘이 될 것이다. 셋째는 유럽 재정 위기 등 위기 요인의 근본적 해소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투자용 금 수요의 위축은 제한적일 가능성이 커 보인다고 이 연구원의 이광우 책임연구원은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