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우 교수의 경영수필] 아이폰만 혁신? 삼성의 작은 혁신도 쌓이면 대혁신

"삼성이 놀라운 성과를 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새로운 카테고리의 제품 하나 없이 혁신적이지 못하다는 국내외 비판의 목소리가 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세요?"

지난해 삼성과 애플이 특허 문제로 법정 공방을 시작할 때 한 유력 해외 통신사 기자가 물었다. 그는 "삼성과 애플의 소송에 세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데 이번을 계기로 삼성이 과연 '빠른 추격자(fast follower)'에서 '혁신자(innovator)'로 바뀔 수 있을 것인가라는 주제의 기사를 준비하고 있다"며 인터뷰를 요청했었다.

필자는 대답했다.

"세상에 없던 완전히 새로운 제품을 만드는 것만이 혁신은 아니지요. 기존에 하던 것들을 과감히 바꾸어 나가는 것, 경쟁사가 보지 못하는 틈새 제품을 만들어 과감히 공략하는 것도 혁신이라 생각합니다."

"예를 들자면요?"

"삼성전자는 공급망 관리(SCM· Supply Chain Management), 구매, 개발 등 프로세스의 혁신은 물론, 애플이 보지 못하던 대형 화면의 스마트폰 개발 등 나름대로의 제품 혁신을 이루어 내며 고객에게 새로운 가치를 제공하고 있지 않습니까?"

◇한국 기업 경쟁력은 모방에서만 나온 게 아니다

삼성의 브랜드 위상이나 실적은 업계 최고 수준이 됐지만, 아직도 많은 해외 전문가는 한국 기업들을 모방자(copycat)로 폄하하고 있다. 그들의 관심은 '삼성이 과연 언제쯤에나 빠른 추격자를 면할 수 있을까'에 있다. 삼성뿐 아니라 많은 한국 업체가 글로벌 시장에서 약진하고 있지만, 최초로 만들어서 시장을 지배하고 있는 제품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 기업들을 여전히 모방자로만 몰아가는 생각엔 동의하기 어렵다. 우리 기업들의 수준이나 전략이 선진 기업을 따라잡기 급급하던 초기와는 크게 달라졌다. 삼성전자가 그렇고 현대자동차가 그렇다. 신(新)모델 개발 기간을 획기적으로 단축하고 구매·생산 부문을 획기적으로 변화시켰다. 그런 모든 점진적 노력의 총화가 경영 성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점진적 혁신도 혁신의 주요한 부분

국내 기업의 혁신 역량을 과소평가하는 분위기 속에서 최근에 발표된 한 기업 순위가 눈길을 끈다. 글로벌 컨설팅 업체인 보스턴컨설팅(BCG)이 2005년부터 매년 발표하고 있는 '가장 혁신적인 50개 기업(The most innovative companies 50)' 순위가 그것이다.

이번에 발표된 2012년 결과에서 한국의 두 대표 기업이 보스턴컨설팅이 조사를 시작한 이래 처음으로 10위권에 진입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삼성전자가 1년 전보다 8계단 상승해 3위에 올랐고, 현대자동차는 12단계 상승해 도요타를 제치고 10위를 차지했다. 물론 애플은 2005년부터 줄곧 1등을 차지했고, 구글은 2006년부터 계속 2등을 지키긴 했지만, 혁신의 모멘텀으로 보면 한국 기업들이 가파르게 치고 올라가고 있는 것이다.

이 순위가 기업의 모든 혁신성과 혁신 문화를 100% 대변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이번 발표는 한국 기업들의 성공 요인을 모방을 통한 빠른 추격에서만 찾는 외국 산업계와 학계에 한국 기업 특유의 끊임없는 점진적 혁신도 혁신의 주요한 부분임을 간접적으로 대변해 주고 있다.

◇대(大)혁신은 작은 혁신이 모여 만들어낸 큰 변화

흔히 스티브 잡스가 아이폰을 출시한 것을 두고 금세기 최고의 혁신이라고 칭한다. 물론 대단한 혁신이다. 전자통신 업계의 지각변동은 물론이고, 우리 모두의 라이프 스타일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 왔다. 세상을 이렇게 일순간에 바꾸는 혁신은 모든 기업의 로망이다. 그러나 업계를 뒤흔드는 이런 혁신도 알고 보면 개발, 서비스, 유통 등에서 이뤄낸 작은 혁신들이 모여 커다란 변화를 만들어 낸 경우가 많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남들과 다르게 사업을 하고, 스스로가 지금까지 해 오던 것과 다르게 일을 함으로써 더 높은 성과를 창출할 것인가'이다. 아이팟, 아이폰과 같은 대(大)혁신은 자주 오지 않는다. 그러나 세상의 흐름을 읽으면서 점진적인 혁신을 계속하는 사람들에게 좀 더 많은 대혁신의 기회가 주어질 것이라는 점은 확실하다. 혁신은 한 번 크게 하고 끝내는 것이 아니고, 경영의 일상(routine)이자 습관이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