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 인터뷰] "농업 수출 늘린다며 유리온실 지원… 농민은 빠지고 대기업 독무대 돼"

관리하는 자산이 삼성그룹의 2배가 넘고, 자본금은 KB금융보다 10조원 많은 조직. 얼핏 떠오르는 다국적 기업이 아니라 농협 얘기다.

동·읍·면 단위로 조직돼 있는 전국 1165개 단위조합과 이들의 중앙조직인 농협중앙회의 자산을 합치면 총 563조원에 달한다. 자본금은 35조원에 육박하고, 근무하는 직원 수만 8만6000명이며, 조합 회원 수는 244만5000명에 달한다. 그래서 이곳을 이끄는 농협중앙회장에게는 '농민 대통령'이란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그러나 그만큼 유혹에도 흔들리기 쉬워 지금까지 많은 역대 회장들이 공무상 혹은 개인 비리로 수감됐다.

결국 농협은 지난 2009년 중앙회장의 과도한 권력 집중을 막기 위해 쇄신안을 내놨고, 지난해 3월 2일 은행·보험·증권 등 금융사업(신용부문)과 유통 등 일반 경제 사업을 분리해 조직을 전문화하고 권한을 분산하는 '신경(信經) 분리'를 단행했다. 신경 분리 1주년을 맞아 지난달 27일 최원병 농협중앙회장을 서울 서대문 농협 본사 집무실에서 인터뷰했다. 농협은 신경분리 1주년을 맞아 6805억원을 신규 투자하고 경제사업 부문에 소매·공판(공동판매)·식품·종묘사업 등 4개 자회사를 설립하기로 했다. 분리된 금융 부문의 경영은 금융지주 회사에 맡기고, 농협은 유통·가공식품 제조·종자 사업 등 본연의 업무에 충실하겠다는 것이다.

◇13전 12승 1패, '선거의 달인'

농협중앙회장은 원래 정부가 임명하는 임명직이었지만, 민주화 물결과 함께 1988년부터 전체 1165명의 조합장이 직접 선출하는 선거 방식으로 바뀌었다. 지금까지 한호선·원철희·정대근·최원병 등 총 4명의 회장이 선출됐다. 이들은 모두 연임했는데, 최 회장도 2011년 말 4년 임기 연임에 성공했다.

농협은 2015년 말 선출하는 차기 회장부터 임기를 단임제로 바꿨다. 이에 따라 최 회장은 연임에 성공한 마지막 회장으로 남게 됐다.

―1986년 경북 경주 안강농협 조합장부터 도의회 의원, 중앙회장까지 여러 선거를 치렀다. 전적이 어땠나.

"13전 12승 1패. 한 번 졌다. 1991년부터 2006년까지 경북도의회 의원을 네 번 연속으로 했는데, 3선 시절 도의회 의장에 도전했다가 상대한테 3표 차이로 탈락한 적이 있다."

―선거의 달인처럼 들린다. 비결이 뭔가.

"첫째는 한눈팔지 않고 한 우물 판 것이다. 인생의 1차 목표는 경북도의회 의장이었다. 원래 도 의원을 세 번만 하고 그만두려 했는데, 도 의장이 되기 위해 도의원을 한 번 더 했다. 그런데 당시 현직 도의회 의장과 다른 경쟁 후보가 군수 선거에 출마하면서 유력한 경쟁 후보가 사라졌다. 그래서 선거를 치르지 않고 추대식으로 의장이 됐다. 다 팔자소관이란 생각이 들더라(웃음).

둘째는 '가까운 곳에서부터 인정받으라'는 것이다. 농협 회장이 되기 전 대형 정미소 조합회장을 맡았다. 2007년 첫 농협 회장 될 때 1차 투표에 세 명이 경합했는데, 2위로 결선에 진출했다. 그런데 200여 명의 대형 정미소 조합장들이 결선 투표에서 나 대신 선거 운동을 다 해줬다. 인간 최원병이 어떤 사람인지 잘 아는 분들이 든든한 지원군이 돼준 것이다. 셋째는 너무도 당연하면서 가장 기본적인 '신뢰'다. 내가 지금까지 했던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면 나는 지금 이 자리에 없었을 것이다."

―농협중앙회장은 인사로 챙길 수 있는 자리나 이권이 많은 막강한 자리로 알려져 있다. 실제 어떤가?

"잘못 알려진 것이다. 농협 인사만큼 투명한 곳이 없다. 작년에 농협 신입사원 선발 때 여동생 아들이 지원했다가 떨어졌다. 필기는 통과했는데 면접에서 탈락했다. 여동생이 나한테 '오빠가 회장인데 조카 하나 취직 못 시키느냐'며 서운해했고, 결국 내가 미안하다고 얘기했다. 흔히 면접은 요식행위라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다. 면접 경쟁률이 3대1을 넘는다. 당연히 실력대로 해야 하고 조카가 운이 없었던 것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고교(동지상고) 후배라서 회장이 됐다는 설도 있는데.

"나는 거짓말 안 한다. 5년 전 12월 27일에 회장으로 선출됐는데, 노무현 정부 말기였고 이명박 대통령이 대통령 당선된 지 8일 만이다. 그 짧은 기간에 무슨 줄을 대고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겠나."

―전혀 도움을 받지 않았다는 얘긴가.

"솔직히 이 전 대통령에게 고맙게 생각하는 부분이 있다. 농협 회장은 온갖 외풍에 시달리는 자리다. 그런데 내가 대통령 측근으로 알려져 있다 보니 회장 재임 5년간 단 한 건의 인사 청탁도 없더라. '수양산 그늘이 강동 80리까지 간다'고 하지 않나. 내가 대통령이랑 같은 학교를 나왔다고 하니 사람들이 내가 무척 센 사람인 줄 알고 지레 겁을 먹고 함부로 인사 청탁을 하지 않았다. 그 덕에 농협을 위해서 정말 열심히 일할 수 있었고, 재작년에 연임에도 성공했다. 이 부분만큼은 전적으로 이 전 대통령 덕이다."

◇"농업 정책 너무 뚝딱 만든다"

―직원으로 입사해 회장까지 됐다. 소회가 남다를 것 같은데.

"1970년 농협에 입사해 첫 근무지가 경주였다. 그때 월급이 2만원이었다. 당시 농협의 주된 역할이 고리로 고생하던 농민들에게 상대적으로 낮은 금리에 돈을 빌려주는 일이었다. 요즘엔 가만히 있어도 이자가 들어오지만 그때는 밤 12시 넘게 이자를 받으러 다녔다. 그때에 비하면 요즘 직원들은 진짜 편한 거다."

―요즘 식품 물가 상승이 문제가 되고 있다.

"포장 문제부터 잡아야 한다. 쇠고기 선물세트 한번 봐라. 간단히 포장할 수 있는데, 포장이 최고급이다. 아마 우리나라 사람들이 질보다는 눈에 보기 좋은 걸 선호하기 때문일 것이다. 꿀을 보더라도 포장을 오동나무 상자로 하는데, 그 위로 옻칠을 하고 열쇠고리까지 달아 만든다. 속 내용이 만원이라면 포장도 만원이다. 그게 다 가격으로 반영되는 거다. 내가 농협부터라도 이걸 좀 줄여보라고 얘기했더니 실무자들이 '회장님, 그러면 우리는 선물세트 하나도 못 팝니다'고 하더라. 결국 어느 한 업체가 개선할 문제가 아니고, 국가적 차원에서 포장 규격을 만들어 불필요한 낭비를 줄였으면 한다."

―역대 정부마다 농업을 신성장 동력으로 만들겠다고 했지만 큰 성과가 없다. 왜 그런가.

"정책 당국자들이 정말 농업정책을 뚝딱 만든다. 그런데 우리처럼 현장에 있는 사람들이 보면 시행할 수 없거나 큰 부작용을 낳는 게 대부분이다. 예를 들어, 요새 대기업들이 유리 온실을 만들어 농산물 수출을 많이 하는데, 이건 원래 농민이 하던 것이다. 그런데 정부가 농업을 수출산업화하겠다며 대규모 유리 온실 제작 사업 지원을 시작했고, 그에 따라 대기업이 들어오면서 거의 대기업의 독무대가 돼버렸다. 주인공인 농민이 빠진 농업 대책이 된 것이다. 이런 식으로 하면 농민은 남의 집 일하는 일꾼으로 전락하고 만다. 농민을 경영인으로 만들어 줄 수 있느냐를 농업정책의 판단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예순 넘어 귀농? 그건 쉬러 온 것… 30·40대만 예산 지원해야"]

"나도 10분만 일해도 숨차, 50대가 귀농·귀촌 마지노선"

“나도 농사를 짓고 있지만, 10분만 쪼그려 앉아 일하면 숨이 턱 막혀요.” 최원병 농협중앙회장이 60세 이상 고령층을 귀농(歸農)·귀촌(歸村) 지원에서 빼야 한다고 주장하며 한 말이다.
젊어서부터 농업에 단련된 몸이면 모르되, 60이 넘어 농사를 새로 시작한다는 건 어렵다는 것이다. 그는 “60이 넘어 퇴직 후 휴양 가는 사람들을 귀농·귀촌 명목으로 지원하면 안 된다”라고도 했다.
그는 예산 지원을 젊은 층에 집중해 젊은 귀농을 활성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30대가 진짜 귀농이고, 40대, 최고 50대까지만 귀농·귀촌으로 봐야 합니다.”
그는 고향인 경주에서 2300㎡가량 규모로 벼농사를 짓고 있다. 그는 “주기적으로 고향을 찾아 모심기, 잡초 뽑기, 벼 베기 같은 걸 해서 주변 사람들과 나눠 먹는데 보통 힘든 일이 아니다”고 말했다.
2001년부터 2012년 상반기까지 귀농·귀촌한 사람은 모두 3만8788명이며, 2011년부터 급증하는 추세이다. 2010년 4067명에서 2011년 1만503명으로 늘었고, 2012년엔 상반기에만 8706명이 농촌에 터를 잡았다. 그런데 이 중 4명에 1명 정도가 60대 이상이다.
귀농·귀촌은 제대로 준비하지 못하면 실패한다. 내려간 지 1년 만에 되돌아오는 사람이 5%에 이른다. 최 회장은 “귀농·귀촌의 개념부터 다시 짜야 한다”며 “그래야 귀농·귀촌한 본인과 농촌 모두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