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현장] 요즘 홍콩 빌딩, 무역회사 방 빼고 세계적 갤러리 성업 중

'세상에서 가장 비싼 작가' 데미안 허스트(Hirst·48) 전시를 꾸준히 열어 온 런던 메이저 갤러리 화이트큐브, 연 매출 1조원을 올리는 화랑계의 최강자 미국 가고시안, '가장 비싼 일본 작가' 무라카미 다카시(41)가 전속인 파리의 갤러리 페로탱, 영국 메이저 화랑 벤 브라운과 사이먼 리…. 최근 3년 새 홍콩에 분점(分店)을 낸 서구 유명 갤러리 목록이다. 작년 봄엔 영국 경매회사 소더비가 홍콩에 전시장을 열었고, 이달 14일엔 뉴욕 메이저 화랑 리먼 머핀이 홍콩점을 개관한다. 모두 7곳의 서구 화랑이 홍콩에 안착하는 것. 아시아 금융 허브(hub) 홍콩에 '현대미술(comtemporary art) 허브'라는 새로운 별칭이 붙고 있는 것이다.

지난 1일 오후 홍콩 심장부 센트럴(Central)의 페더(Pedder) 빌딩 407호. 건물 가운데 서 있는 기둥은 아랫부분 페인트가 벗겨졌고, 뼈대까지 드러나 있다. "세계적 건축가 램 쿨하스의 '작품'이에요. 전시장 인테리어를 부탁했더니 공간의 역사성을 보여주겠다며 이렇게 했죠." 코트니 플러머(38) 리먼 머핀 공동 경영자의 설명이다. 리먼 머핀은 홍콩 분점 개관전으로 한국 설치미술가 이불(49) 개인전을 연다.

페더 빌딩은 1923년 신(新)고전주의 양식으로 지은 고풍스러운 건물. 80년 넘게 홍콩 무역의 거점 역할을 했지만, 현재는 갤러리 빌딩으로 거듭나고 있다. 8층짜리 이 건물엔 가고시안, 벤 브라운, 사이먼 리, 홍콩 화랑 펄램과 한아트 등 모두 6개 화랑이 이미 입점했다. 플러머 리먼 머핀 공동 경영자는 "우리도 다른 화랑들 움직임에 빠질 수 없었다. 홍콩은 국제적 도시인 데다 면세(免稅)라는 점이 매력"이라고 했다.

페더 빌딩에서 550m 떨어진 코노트 로드(Connaught Road) 센트럴 50번지 빌딩도 또 다른 갤러리 건물로 부상 중. 28층짜리 건물의 1층과 지하에 자리한 화이트큐브에선 현재 데미안 허스트 최신작 전시가 열리고 있다. 건물 17층엔 갤러리 페로탱, 6층엔 대만 경매회사 라베넬이 둥지를 틀었다.

서구 갤러리 홍콩 분점의 주 고객은 누구일까? 앨리스 렁(31) 갤러리 페로탱 홍콩 책임자는 "지금은 홍콩 현지 컬렉터를 대상으로 팔기엔 힘들다. 이들이 현대미술에 대한 이해도가 낮기 때문이다. 그러나 쉬운 작품부터 시작해 점점 홍콩, 중국, 싱가포르, 대만 등으로 컬렉터군을 넓혀갈 거다. 현대미술 이해도가 높은 한국 컬렉터는 그런 면에서 아주 좋은 고객"이라고 했다. 플러머 리먼 머핀 공동경영자도 "우리의 목표는 '새 고객(new audience) 확보"라고 했다.

2011년 아트바젤이 아트 홍콩(홍콩 아트페어)을 인수한 것도 홍콩을 '아시아의 미술 중심지'로 키우는 데 촉매 역할을 했다. 올 5월 열리는 제1회 '아트바젤 홍콩'을 준비 중인 매그너스 렌프루(37) 아트바젤 아시아 디렉터는 1일 "올해엔 전 세계 35개국에서 245개 화랑이 참여하는데, 그중 절반이 아시아 화랑이다. 아트바젤과 기존 고객들이 아시아 '블루칩 작가'를 찾아 홍콩으로 몰려들 것"이라 자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