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마트가 매장 진열을 담당해온 하도급 회사 소속 직원 1만여 명을 한꺼번에 정규직으로 직접 고용하겠다고 4일 발표했다. 국내 기업 중 사내하도급의 정규직 전환으로는 사상 최대 규모다. 고용노동부가 이마트에 대한 특별근로감독을 통해 도급 직원들이 불법 파견에 해당한다며 직접 고용을 지시한 지 사흘 만이다. 법원이 최근 현대자동차와 한국GM의 사내하도급에 대해 불법 파견이라고 판정하고, 박근혜 대통령도 취임 직후 '임기 내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천명한 상황에서 나온 이마트의 조치는 유통업뿐 아니라 다른 산업 분야 기업들에도 큰 압박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용인된 편법' 사내하도급, 더 이상 버티기 어려워
이마트 전국 146개 매장의 진열을 담당하던 직원은 1만여 명이다. 이마트는 인력 파견 회사에 '매장 진열' 업무를 통째로 맡겼다. 이들은 이 인력 파견 회사에서는 정규직이었지만, 이마트 정규직 직원의 지시를 받았다. 다시 말해 편법으로 파견 근로자를 쓴 것이다. 고용노동부는 이것이 불법이라고 지적했다.
이마트의 이번 조치로 정규직화되는 직원들은 연간 평균 소득이 27% 상승하는 효과가 생길 것으로 추산됐다. 기존에 혜택을 보지 못했던 학자금·의료비·경조사 지원, 회사 근로복지기금 대출도 가능하다. 이로 인해 이마트는 매년 600억원 정도의 추가 부담을 떠안을 것으로 예상했다. 작년 영업이익(7760억원)의 7.7%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이마트 조치는 다른 대형마트들의 비정규직 해법에도 영향을 끼칠 전망이다. 롯데마트는 올 상반기 중 용역회사 직원 등 1000명을 직접 고용할 계획이며, 홈플러스도 매장 직원 중 비정규직을 매년 100명가량 정규직으로 전환하고 있다.
◇고심하는 제조업체들
유통업체들보다 제조업체들은 비정규직 해법에 더 고심하고 있다. 우선 사내하도급 관행이 자동차·조선 등 제조업에 더 많고 문제 해결에 비용도 더 많이 들기 때문이다. 특히 정규직과 사내하도급 직원들이 같은 생산라인에 섞여 있는 경우도 많아 "오른쪽 바퀴는 정규직, 왼쪽 바퀴는 비정규직이 만든다"는 비아냥을 낳기도 했다.
법적인 문제도 제조업에서 먼저 불거졌다. 지난해 2월 대법원은 현대자동차 사내하도급으로 일하다 해고된 근로자를 현대차의 노무 지휘를 직접 받은 파견 근로자로 인정해 정식 직원으로 채용하라고 판결했다. 자동차 회사들은 정규직·사내하도급 근로자들의 작업 장소·내용을 달리하는 등 보완책을 마련하고 있다. 현대차는 지난해 말 2016년까지 사내하도급 근로자 3500명을 정규직으로 신규 채용하겠다는 계획을 내놓기도 했다.
그러나 이 조치 역시 미봉책일 뿐이라고 노동계는 비판하고 있다. 고용부가 2010년 300인 이상 사업장 1939곳을 조사한 결과 사내하도급 근로자는 전체 근로자의 24.6%인 32만6000명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동차업계는 전체 근로자의 16.3%가 사내하도급이며 현대차의 사내하도급 근로자 9000여 명 중 불법 파견이 인정될 수 있는 인원도 7000여명에 달한다는 것이다.
현대차의 한 임원은 4일 이마트의 '1만명 정규직 전환 조치'에 대해 "방향이야 바람직하지만 고용시장이 경직된 상황에서 기업들 숨통을 터줄 방안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당장 임금 상승도 문제지만 '고용 유연성 없는 직접 채용 확대'의 부담이 더 크다는 주장이다. 한국경제연구원 변양규 박사는 지난 2011년 발표한 논문에서 현대차가 사내하도급을 모두 정규직으로 채용할 경우, 매년 1573억원, 이들의 정년까지 총 3조9400억원 이상의 추가 비용이 발생할 것이라고 추산하기도 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의 한 간부는 이날 "아무리 편법적인 요소가 있었다고 해도 그런 상황이 발생한 현실적 이유를 살펴봐야 한다"며 "기존 대기업 노조의 높은 임금과 낮은 생산성에 대한 개혁, 노동시장의 선진화 없이 기업의 부담만 늘리게 되는 방향은 옳지 않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