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 신발을 체육관 바닥재로… '再제조' 산업이 뜬다

나이키는 미국 내 150개 매장에서 브랜드와 상관없이 헌 운동화를 수집한다. 이렇게 모인 중고 운동화에서 밑창 등 고무 부분을 분리한 다음 분쇄해 '나이키 그린드(Nike Grind)'라고 부르는 재생(再生) 소재를 만든다. 이 소재는 운동장과 체육관 바닥재로 쓰거나 새 운동화를 만드는 데 쓴다.

나이키는 지금까지 운동화 2800만 켤레를 수집, 여기서 나온 재생 소재로 새 제품을 생산했다. '신발 재사용(Reuse-A-Shoe)'으로 불리는 이 사업은 대표적인 재제조(再製造)〈키워드〉 사례로 꼽힌다.

재활용을 통해 돈을 버는 회사가 늘면서 기업들의 경영 방식이 달라졌다. 그동안 소비자에게 판매하기만 했던 제품을 회수해 재활용하는 데 적극 나서는 중이다. 전문가들은 "기업에 재활용과 재제조는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다"고 입을 모은다. 선진국에서는 버려진 자원을 단순히 회수하는 수준을 넘어 새것과 같은 품질을 가진 제품으로 만드는 '재제조' 사업이 주목을 받고 있다.

◇헌 신발로 체육관 바닥재 생산

미국 레저용품 업체 패타고니아는 낡은 옷가지와 신발을 수거해 새로운 섬유나 천 개발에 사용한다. 지금까지 45t 이상 헌 옷을 수거해 이 중 34t 이상이 새 의류로 탈바꿈했다.

프랑스 미용 브랜드 가르니에는 버려지는 화장품 용기를 재활용한다. 이 회사는 2011년부터 환경단체와 함께 '퍼스널 케어 앤드 뷰티 브리게이드'라는 프로그램을 진행 중이다. 미국 전역을 돌며 버려진 미용 제품 용기를 거둬 놀이기구·벤치·가방 등을 제작하는 데 활용하는 프로그램이다.

미국 카펫 생산업체 인터페이스는 '솔레니움(Solenium)'이란 신소재로 매출과 녹색기업의 이미지를 함께 얻었다. 솔레니움은 폴리염화비닐(PVC)을 사용하지 않고, 재사용이 가능한 친환경 카펫이다. 이 회사는 1994년부터 솔레니움 카펫의 생산 비중을 끌어올려 폐기물 처리비를 4억3300만달러 절감했다. 현재 회사의 연간 매출액 10억달러 가운데 90%를 친환경 제품이 차지한다.

지식경제부는 작년 미국의 재제조 시장 규모가 63조5000억원으로 추산된다고 밝혔다. 유럽 시장도 21조원에 달한다. 관련 회사는 미국 7만3000곳, 유럽 2만4000곳으로 집계됐다.

◇폐가전·자동차 부품도 재활용

국내 재제조 시장은 연 7500억원, 업체는 1600곳 수준이다. 선진국에 비하면 아직 규모가 작다. 일부 가전업체를 중심으로 고장 난 제품을 수거해 재제조하는 사례가 점차 늘고 있다.

미국 전역에서 낡은 전자제품을 매립 처분하는 것을 금지하는 법안이 시행되면서 국내 업체들은 대책을 모색하고 있다. 최근 들어 스마트폰과 태블릿PC 제품의 출시 간격이 짧아지면서 재제조의 중요성이 더욱 강조되는 실정이다.

삼성전자는 미국에 1151곳, 캐나다에 16곳 제품 회수 거점을 운영하고 있다. 여기서 지난해 폐가전제품을 회수·재활용한 분량은 3만5516t에 이른다.

자동차 부품 분야는 재제조 사업이 일찌감치 주목을 받았다. 한라그룹 계열사 마이스터와 서한산업은 자동차 부품을 재제조 방식으로 생산해 완성차 업체에 납품한다. 글로비스도 '온에코(Oneco)'라는 전문 브랜드를 만들어 부품 재제조 사업을 추진 중이다.

국내에선 재제조 방식으로 만든 부품이 별로 좋은 반응을 얻지는 못하는 실정이다. 많은 소비자가 중고 부품을 다시 쓰는 데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애플은 고객이 구입한 스마트폰 '아이폰'이 고장 나면 리퍼폰(refurbished phone)으로 바꿔주는 제도를 운용하다 소비자 불만이 높아지자 제도를 변경했다. 리퍼폰이란 회수된 제품을 분해해 사용 가능한 제품으로 재조립한 것을 말한다. 애플은 현재 국내에서는 아이폰 구입 후 1개월 내에 고장이 나면 신제품으로 교환해준다.

강홍윤 한국생산기술연구원 자원순환기술지원센터장은 "국내 휴대전화 제조사들이 재제조 방식을 적극 도입하면 연간 1000억원 이상 원가를 줄일 수 있다"며 "제품 가격이 낮아져 결국 소비자에게도 이득이 된다"고 말했다.

☞재제조(Remanufacturing)

중고 제품을 분해·세척·보수·재조립해 새 제품을 만드는 식으로 재활용하는 것. 성능은 새 제품과 비슷하지만, 원자재 구매 비용이 적게 들어 가격을 낮출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