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은 원래 남자의 전유물이었다

뺨에 닿는 바람은 날카롭지만, 3월의 봄볕은 뜻밖에도 보송보송하고도 아찔했다.

4일 서울 W 서울 워커힐 호텔에서 만난 에르메스 실크 스페셜리스트 임선영씨는 "목덜미에 스카프를 두르기엔 제격인 날씨"라고 했다. "스카프 자체가 차갑고도 따뜻하거든요. 감촉은 서늘하지만, 몸에 닿는 순간 부드럽게 녹아들죠."

스카프는 임씨의 말처럼 이중적 매력을 지닌 물건이다. 본래는 남자들의 전유물이었다. 16~17세기까지만 해도 군인들이 몸을 장식할 때 쓰던 천이었다고 한다. 여성이 처음 사용하기 시작한 때를 두고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 1세(1533 ~1603)가 봄볕에 얼굴 타는 것이 싫어 술이 달린 어깨 장식으로 얼굴을 가렸던 것이 오늘날의 스카프가 됐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필요에 의해 태어났지만, 스카프는 이젠 욕망의 대상이다. 프랑스 소설가 에밀 졸라(Zola·1840~1902)는 소설 '여인들의 행복 백화점'에서 시골에서 갓 올라온 아가씨가 백화점 쇼윈도에서 처음 마주 대한 물건이 스카프였다고 썼다. '드니즈와 일행은 무엇보다도 오밀조밀한 윈도 디스플레이에 매료되었다. (중략) 하지만 그들을 마치 못에 박힌 듯 그 자리에서 꼼짝 못하게 만든 것은 마지막 진열창이었다. (중략) 상품이라는 모티브가 바뀌고 진열대라는 생생한 악절이 바뀌는 동안에도 나지막이 계속되는 반주가 있었는데, 그것은 크림빛 스카프의 나풀나풀한 주름장식 끈이었다."

영화 '초록 물고기'에서도 주인공 막동(한석규)을 휘청거리게 한 건 결국 따지고 보면 진홍빛 스카프 한 장이었다. 덜컹거리는 기차 안에 서 있던 막동의 얼굴 위로 무심하게 날아든 진홍빛 실크. 막동은 그 스카프의 주인공을 찾아 걸음을 옮기고, 그렇게 미애(심혜진)와 처음 마주한다. 영화 '델마와 루이스'에서 주인공 루이스(수잔 서랜던)가 고속도로를 미친 듯이 질주할 때 머리에 질끈 묶고 있던 것도 얇디얇은 한 장의 스카프였다.

19세기 프랑스에선 신분을 나타내기 위한 도구로 쓰였고, 지금은 그 소재와 그림에 따라 때론 정치적 의미를, 때론 자본주의의 유혹을 담아낸다. 스카프라는 이 네모 반듯한 천은 그렇게 유혹의 정점에 서서 보는 이를 희롱하고 어지럽힌다.

스카프라는 위험한 물건. 올봄에 가득 쏟아져 나온 이 매끄럽고 아슬아슬한 아이템을 소개한다. 정교한 그림과 다채로운 패턴, 온갖 색의 소용돌이로 스카프는 '화려하고 눈부신 봄'을, '느리게 걷는 미학'을, '역동적인 스포츠의 매혹'을 설파한다. 이 물건을 그저 몸에 두르고 목에 감는 것만으로, 계절은 바뀌고, 봄볕은 찬연해진다.

스카프는 어디에 어떻게 쓰는 물건일까. 고르는 법부터 활용법까지 살펴봤다.

1 스카프의 종류

스카프는 대개 대형, 미니, 롱의 세 종류로 나뉜다. 대형 스카프는 88×88㎝, 90×90㎝의 크기가 일반적이다. 접어서 몸에 두를 수도 있고, 비비 꽈서 벨트나 헤어밴드로 쓸 수도 있다. 미니 스카프는 반면 보통 55×55㎝, 70×70㎝ 정도의 크기다. 영화 ‘로마의 휴일’에서 오드리 헵번이 목에 둘렀던 것처럼, 접어서 목에 두르거나 가방 손잡이를 장식하는 용도로 많이 쓰인다. 롱 스카프는 직사각형 형태다. 폭 30~50㎝, 길이 130~160㎝인 것이 가장 많다. 이 밖에 기계 주름을 잡은 플리츠 스카프, 눈가리개로 쓰면 딱 좋을 것 같은 크기의 작고 가는 트윌리 스카프도 있다.

2 스카프의 소재

견(silk)이 가장 많이 쓰이는 소재다. 광택이 자연스럽고 우아한 것이 특징이다. 봄·여름엔 가볍고 몸에 닿는 느낌이 쾌적한 마(linen)나 면(cot ton) 소재도 많이 쓴다. 가을·겨울엔 모(wool)나 혼방 소재를 쓰기도 한다.

3 스카프의 활용

대개는 목에 두른다. 몸을 따뜻하게 하기 위해서도 쓰지만 밋밋한 옷차림에 생기를 더해주기 위해서도 쓴다. 넓게 펼쳐 어깨를 감싸기도 한다. 돌돌 말아 목에 리본을 묶어주거나 꽃 모양으로 매듭을 지어주면 목걸이보다도 화사한 장식이 된다. 가방 손잡이에 가볍게 묶어 액세서리로 활용하기도 하고, 여러 번 접어 허리 벨트로 쓰기도 한다. 스카프를 넓게 펼치고 접어 여성용 블라우스 또는 치마 대용으로 쓰는 경우도 많다.

4 스카프의 매듭

스카프는 매듭을 어떻게 묶느냐에 따라 그 쓰임새가 무궁무진해진다. 목에 가볍게 묶어주는 반매듭·온매듭 기법이 있는가 하면, 리본 매듭·나비 매듭으로 더 화려한 멋을 낼 수도 있다. 매듭을 여러 번 묶어 가방을 만들 수도 있다. 이를 핸드백 매듭이라고 부르는데, 실크 스카프 몇 장을 엮으면 가볍게 팔목에 걸칠 수 있는 근사한 가방이 나온다.

5 스카프 고르기

얼굴색에 맞는 스카프를 고르는 게 기본이다. 스카프 초보자일수록 민무늬에 단색 스카프를 선호하지만, 다채로운 색이 한꺼번에 들어간 스카프가 오히려 어떻게 묶어도 입은 옷 색깔과 매치하기 쉬워 활용도가 높을 수 있다. 스카프는 펼쳐서 쓸 때보단 돌돌 말거나 접어서 쓰기 때문에 모서리만 보이는 경우가 더 많다. 따라서 모서리에 무늬가 들어가 있거나 포인트 색이 들어간 것을 고르는 게 좋다.

6 스카프로 체형 보완하기

키가 커 보이고 싶을 땐 화려한 빛깔의 짧은 스카프를 가볍게 목에 둘러준다. 시선을 위로 끌어올려 키가 한결 커 보인다. 얼굴을 작게 보이고 싶을 땐 스카프를 브이넥 형태로 묶어서 늘어뜨려주면 좋다. 스카프를 돌돌 말아 목 아래에 느슨하게 교차해서 묶어준다. 날씬하게 보이고 싶다면 긴 스카프를 목에 한 번 둘러 늘어뜨린다. 몸에 긴 세로 선이 생겨 한층 날렵해 보인다.

7 액세서리로 활용하기

진주 목걸이에 미니 스카프를 감아주면 새로워 보인다. 새 액세서리가 필요할 때 권하는 연출법이다. 화려한 보석이 박힌 머리핀으로 스카프를 고정해도 괜찮다. 매듭을 묶는 대신 머리핀으로 고정하는 것. 스카프의 색깔과 정반대 머리핀을 골라 고정해주면 더욱 산뜻하다.

8 남성을 위한 활용법

남자도 스카프를 적절하게 쓰면 인상이 한결 부드러워진다. 가장 많이 쓰는 건 넥타이 대신 스카프를 두르는 것. 잔잔한 무늬가 들어 있는 스카프를 목에 넥타이처럼 두른다. 카우보이 스타일로 묶어줘도 좋다. 한결 젊어 보이는 스타일이다. 이때 매듭은 정면보다는 살짝 옆으로 돌려 매는 게 더 예쁘다.

9 올바른 관리법

스카프는 빨래하면 변색하기 쉽다. 필요할 땐 가급적 드라이클리닝을 할 것을 권한다. 스카프는 접어서 비닐백에 방습제와 함께 넣어두는 게 가장 좋다. 햇빛 아래 오래 놔두면 색이 변하기도 한다. 큼직한 스카프는 옷걸이에 반듯하게 걸어둔다.

10 올봄 유행

올봄엔 ‘메시지’를 담은 스카프가 많다. 넓은 정원을 새겨넣어 ‘느린 하루’나 ‘걷기의 미학’을 설파하고, 요트나 골프, 장기판을 새겨넣고 ‘스포츠의 매혹’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시계·지도·나침반 등을 새겨넣은 스카프도 유난히 많다. 모두 ‘여행의 기쁨’을 이야기한다. 스타일리스트 김성일씨는 “올해는 작은 행복과 느린 삶의 즐거움, 떠남의 설렘을 담아낸 스카프가 많다. 스카프가 매해 시대상을 반영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도움말=에르메스 실크 스페셜리스트 임선영, 마리아 꾸르끼 이지현 과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