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손 빌리는 현대미술을 고발합니다

전시장에 추상화 한 점이 놓여 있다. 큐레이터가 이렇게 설명한다. "작가는 인력시장에 의뢰해 일용직 노동자 두 명을 섭외했습니다. 이들은 작가가 밑칠해 둔 캔버스를 5시간 동안 걸레로 닦았지요. 그들의 노동으로 완성된 이 추상화에 작가는 '걸레질'이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작품 옆에 설치된 모니터에선 평론가 셋이 '남의 노동'을 자기 작품으로 삼은 김홍석의 행위를 비평하는 영상이 나온다. 이쯤 되면 관객은 생각한다. '이 작가, 부도덕하지 않은가.'

그러나 진실은 이렇다. 작가 김홍석(49)은 그림을 직접 그렸지만, 관객들에게 거짓말을 한 것이다. 현대 미술품 뒤에 숨어 있는 이름 없는 노동자들을 생각해보도록 하기 위해 작가가 꾸며낸 이야기. 남의 노동을 빌려 '작품'을 만드는 현대미술 작가에 대한 항의이자, 숨겨진 노동에 대한 환기이다.

7일부터 5월 26일까지 서울 태평로 삼성미술관 플라토에서 열리는 그의 개인전 '좋은 노동 나쁜 미술'은 현대미술가의 '직업윤리'를 묻는 자리다. 개념미술이 인기를 끌면서 국내에도 타인의 손을 빌려 작업하는 작가들이 적지 않은 편. '노동의 가치'라는 개념으로 생각하면 백남준이 한 말 "예술은 고등(高等) 사기"라는 말이 딱 들어맞는 상황이다.

예술가 이름 뒤의 이름 없는 노동을 환기시키려는 작가의 시도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쇼핑백을 얼굴에 뒤집어쓴 남자가 오른팔을 벽에 뚫린 구멍에 집어넣은 채 몇 시간째 서 있다. '작품'을 위해 고된 노동을 계속하는 연기자에게 관객은 안쓰러움을 느끼게 된다. 관객이 마음의 부담을 덜 수 있는 방법은 딱 한 가지. 따스하게 손을 내밀어 벽 밖으로 튀어나온 그의 손을 잡아주는 것. 손을 잡는 순간, 관객은 남자가 인간이 아니라 마네킹임을 알게 된다. 작품 제목은 '수줍게 악수를 청하는 남자'(2013).

김홍석의 작품 역시 가슴보다는 '머리'로 이해해야 하는 현대적 관념 미술. 큐레이터의 설명이 따라붙지 않는다면 해독 불가다. "역설이다. 당신 작품 뒤에 숨겨진 '노동자'는 전시 해설을 맡은 큐레이터다. 큐레이터에게 일당을 지급하라" 했더니 그는 안소연 플라토 부관장을 가리키며 "우리는 오래된 콤비라 괜찮다"며 눙쳤다. 1577-75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