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자 한니발, 식인종 한니발 덤덤하게 보여주지

영화와 드라마, 소설 속에 등장하는 캐릭터 중 최고 악인을 뽑으라고 한다면 '한니발 렉터'가 빠지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한니발은 명배우 앤서니 홉킨스가 영화 '양들의 침묵'과 '레드 드래곤'에서 연기한 캐릭터로, 사람을 죽이고 그 시신으로 요리를 해 먹는 인물이다. 이 캐릭터는 전 세계 영화 팬에게 큰 충격을 안겨줬고, 지금껏 여러 차례 재창조되면서 '한니발=앤서니 홉킨스'라는 등식을 만들어냈다.

그런데 한 배우가 이 공식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영화 '더 헌트'로 작년 칸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받은 덴마크 출신 배우 매즈 미켈슨(Mads Mikkelsen·48)이다. 그는 오는 4월 소니픽처스TV가 미국 NBC를 시작으로 전 세계에 방영하는 드라마 '한니발(Hannibal)'에서 주인공 한니발 렉터 역할을 맡았다. 국내에서는 4월 13일 오후 10시부터 미국 드라마 전문 케이블 채널인 AXN을 통해 그 모습을 볼 수 있다. 지난 3일(현지 시각) 캐나다 토론토의 드라마 촬영장에서 매즈 미켈슨을 만났다.

―앤서니 홉킨스 연기로 잘 알려진 '한니발'을 연기하는 부담감은 없나.

"한니발은 한 아이콘이다. 잘 알려진 캐릭터이면서도 표현하기 상당히 어려운 인물이다. 이성과 비(非)이성이 혼재해있다. 사실 앤서니 홉킨스가 연기한 한니발을 벗어나기 위해서 그가 출연한 영화 등을 많이 참고했다. 그렇지만 부담은 없다."

―앤서니 홉킨스의 한니발과 당신의 한니발의 차이점은?

"내가 표현하는 한니발은 앤서니 홉킨스의 한니발보다 더 아이러니컬하다. 나의 한니발은 타인과의 관계에 더 치중한다. 윌 그레이엄(연쇄 살인을 추적하는 프로파일러)이라는 인물과 우정을 쌓으려 노력하면서도 끊임없이 살인과 식인을 거듭한다. 정상과 비정상을 끊임없이 넘나든다."

덴마크의 최고 섹시 스타이자 '국민 배우'인 매즈 미켈슨은 다면(多面)적인 배우다. 전문 댄서였으나 30세에 연기자가 되기로 결심하고, 1996년 영화 '푸셔'로 데뷔했다. 그 후 작품성 있는 단편 영화, 코미디극,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등에 골고루 출연했다. 성추행범으로 몰린 약자(더 헌트), 비열하고 비정한 악당(007-카지노로얄), 개혁적이면서 로맨틱한 의사(로얄어페어) 등 선과 악을 넘나드는 호연을 보여왔다. "내 커리어를 중시하지 않는다"는 그는 작품 선택 기준도 "그냥 작품이 내 마음에 들면"이라고 말했다.

―선한 역할과 악한 역할 중 어떤 역할이 연기하기 편한가.

"둘 다 좋아한다. 배우란 선한 이미지 속에서도 나쁜 모습을 찾아내고, 악당을 연기하면서도 그 안의 선한 모습이나 약한 모습을 드러낼 줄 알아야 한다. 그래서 난 항상 선악을 동시에 담으려 노력한다. 그게 배우니까."

―아동 성추행 누명을 쓴 유치원 교사로 연기한 '더 헌트'로 작년 칸영화제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연기 비결이 있나.

"캐릭터의 감정을 너무 표면적으로 드러내지 않으려 한다. 너무 많은 감정은 균형을 무너뜨린다. 덤덤한 듯하면서도 깊이가 묻어나게 하는 것, 그것이 열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