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문으로 기차 타는 아가씨, 지금은 뭐하고 있을까?

명절 때 귀성 열차표 구하기는 하늘의 별 따기였다. 목포행 완행열차는 지정석이 없어 경쟁이 더 치열했다. 서울역 역무원은 승객을 종일 줄 서 기다리게 해놓고 출발 5분 전쯤 열차로 내몰았다. 늘 체력 좋고 날렵한 승객이 좌석을 차지했다. 1967년 추석을 하루 앞둔 9월 21일, 김성배 서울신문 기자는 먼저 뛰어들어간 청년이 창문을 통해 여성을 끌어올리는 진풍경을 카메라에 담았다. "서비스는 엉망, 교통행정은 최악이었는데도 서민은 항의도 안 하고 기가 찰 만큼 순수했다"고 그는 회상한다.

1979년 11월 7일 포승줄에 묶인 김재규가 궁정동 중앙정보부 안가 현장검증에서 박정희 대통령을 향해 총을 쏘는 장면을 재현하고 있다. 모든 것을 체념한 표정이다. 당시 조간신문 대표로 촬영한 최영호 조선일보 기자는 "방에 들어설 때부터 온몸이 덜덜 떨렸고 셔터를 누르는데 마치 내게 총을 겨누는 것 같았다"고 술회한다. 김재규는 법정에서 "야수의 심정으로 유신의 심장을 쐈다"고 진술했다.

사진집 '특종 역사를 말하는 사진'(전민조 엮음, 눈빛)에는 한국 현대사의 주요 순간이 인화돼 있다. 1896년쯤 촬영된 고종 황제 어진(御眞)부터 1948년 여수·순천사건, 6·25 전쟁 직후 청년 실업, 1960년 4월 마산 앞바다에 떠오른 소년의 시신, 1961년 5월 시청 앞에 등장한 쿠데타 주역, 1·21사태와 김신조, 흑산도 간첩소탕작전, 정인숙 살해사건, 1970년 김일성과 이후락이 나눈 평양의 악수, 불붙은 대연각 호텔에서 매트리스를 안고 투신하는 투숙객, 1975년 서울대생의 유신반대 알몸 시위, 1980년 5월의 광주 금남로 등 특종 사진 64점으로 우리 현대사의 굴곡을 들여다본다. "현장을 놓치면 직무유기"라는 각오로 위험을 무릅썼던 사진기자들의 증언으로 각각의 사건과 뒷이야기를 들려준다. 아득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