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ly BIZ] 18억 이슬람 경제 중심지로 말레이시아가떠오른다

이달 1일 오전 11시쯤 쿠알라룸푸르 시내. 높이 452m 랜드마크 '페트로나스 트윈타워'와 호화 쇼핑몰 '파빌리온' 등이 몰려 있는 최고의 금싸라기 지역에 호텔과 콘도미니엄 등 빌딩 신축 공사가 한창이었다. 55층짜리 호텔·레지던스 복합건물 '반얀트리 시그너처 파빌리온', 49층·43층 2개 동으로 된 '르 누벨' 콘도미니엄 등 하늘을 찌를 듯한 고층 건물들이다. '세계 어느 곳에 이런 건설 붐이 또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반얀트리 빌딩의 30평·70평대 레지던스는 3.3㎡당 가격이 2500만원 이상인데도 한 달여 만에 492가구가 모두 다 팔렸어요."(부동산 컨설팅 회사 '사빌스 라힘' 로버트 앙(Ang) 사장). 구매자 명단에는 중국과 싱가포르, 중동의 부호들도 이름을 올려놓고 있고, 카타르 국부펀드(QIA)는 말레이시아 최대 기업 페트로나스와 손잡고 호텔·사무실·쇼핑몰 등을 갖춘 70층·50층대 빌딩을 짓기로 했다. 크리스틴 라가르드(Lagarde) IMF 총재가 "말레이시아는 지난해 우리의 성장 전망치를 상향 조정하게 만든 세계에서 유일한 국가"라고 말한 게 실감이 났다.

인구 160만명 남짓한 이 도시에 지난해 그랜드하얏트 등 5성급 호텔만 3개가 더 들어섰다. 별 3~5개짜리 호텔 방은 지난해 3648실(室)이 더 늘어 2만1339실이 됐다. 인구 1000만명의 서울과 거의 같은 수준이다. 6성급 호텔인 세인트 레지스와 W호텔, 포시즌 등이 줄줄이 문을 열 예정이다.

주식시장도 활기가 넘친다. 지난해 쿠알라룸푸르 주식시장에서 이뤄진 기업공개(IPO) 규모는 70억달러로 뉴욕·도쿄·홍콩 등에 이어 세계 5위에 올랐다. 이 중 국영 팜오일 기업인 펠다글로벌벤처스(33억달러)와 병원 운영기업인 IHH 헬스케어(21억달러)는 각각 세계 기업공개 규모 랭킹 4위와 6위를 기록했다.

분출하는 말레이시아의 경제 열기는 침체에 허덕이는 글로벌 경제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 2012년 4.2% 성장을 전망했던 IMF 등 국제기구는 예상을 훨씬 웃돈 5.6%라는 최종 성장률에 깜짝 놀랐다. 지난해 4분기 성장률은 6.5%에 달했다. 글로벌 컨설팅 기업인 PwC는 "향후 7~8년 넘게 매년 5% 이상 성장이 가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말레이시아는 이런 성장을 바탕으로 동남아 국가(싱가포르 등 도시국가 제외) 가운데 처음으로 1인당 GDP 1만달러를 돌파했다. 정부 재정적자는 2009년 GDP 대비 -6.6%에서 -5.6%→-4.8%→-4.5%로 매년 감소하고 있다.

실업률 3.1%, 소비자 물가상승률 1.6%, 14년 연속 경상수지 흑자, 외환보유고 1386억달러의 경제 성적표는 동남아 국가들의 선망의 대상이다.

이런 말레이시아의 성장 원천은 민간투자이다. 2012년 민간투자는 1395억링깃(집행기준·약 49조원)으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전년보다 25% 정도 급증했다. 매년 관광객 2500만명이 600억링깃을 뿌리고 가는 세계 9위권의 관광 산업도 현금 창출원이다.

말레이시아는 금융의 강자이기도 하다. 세계 인구의 4분의 1인 무슬림의 돈을 쥐락펴락하는 이슬람 금융의 허브이다. 이슬람 채권인 '수쿠크(Sukuk)'가 지난해 세계 23개국에서 1400억달러어치 발행됐는데, 이 중 74%인 1040억달러를 말레이시아에서 발행했다(시장조사업체 Zawaya 추산). 영국·싱가포르 등 금융 중심지와 밀접한 관계를 맺으면서 이슬람과 자본주의를 연결하는 다리가 된 것이다. 말레이시아는 이슬람 금융의 국제 표준을 제정하는 '이슬람 금융위원회(IFSB)'를 유치(2002년)하고, 전 세계 유일의 이슬람 전문 대학(INCEIF)을 세웠다.

18억명의 이슬람 시장을 겨냥한 '할랄 산업'도 유망하다. '할랄(Halal)'은 이슬람 율법 '샤리아'에 따라 '허용되는 것'을 의미하는데, 그동안 음식 영역에 한정됐다가 최근 건강보조식품·화장품·의약품으로 영역이 넓어지고 있다. 세계 할랄 시장은 2조3000억~3조달러 규모(AT Kearney 컨설팅 등)로 추정된다.

말레이시아의 2011년 할랄 상품 수출은 6945억링깃으로 전체의 5.1%를 차지했다. 할랄 생산 전문 업체를 유치해 파격적인 면세 혜택을 주는 이른바 '할랄 파크'가 전국에 22개 설치돼 있는데, 카길·코카콜라 등 외국 기업 20여개와 중소기업 80여개가 입주해 있다. 이들 기업은 말레이시아를 거대 이슬람 시장을 향한 교두보로 만들겠다는 전략이다. 이에 발맞춰 말레이시아는 주요 생산국을 넘어 국제 표준을 주도한다는 포부이다. 용틀임하는 말레이시아 경제 현장과 시장 공략 방안을 Weekly BIZ가 점검했다.

☞수쿠크(Sukuk)

이슬람 율법은 돈 굴리는 걸 금한다. 그래서 이자를 주는 채권을 못 만든다. 수쿠크는 이를 우회하는 수단으로 개발됐다. 예를 들어 어느 기업이 돈이 필요하다고 하자. 그 기업은 일단 가지고 있는 건물을 형식적으로 투자자에게 판 뒤 월세를 내면서 그 건물을 계속 사용한다. 집세를 주고받는 것은 율법에 어긋나지 않기 때문이다. 기업은 건물 판 돈을 필요한 데 쓴 뒤 나중에 그 건물을 같은 값을 주고 되사들인다. 이는 원금을 갚는 셈이고, 그동안 낸 월세는 이자가 되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