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던 광고 파노라마] [11] 양복은 모던보이 필수품'중고품 헌 옷'도 신문 광고

1935년 7월 5일자 조선일보 5면 하단엔 오늘날 상식으론 선뜻 이해하기 어려운 종류의 광고가 큼지막하게 실렸다. '중고 양복류 대안매(大安賣·싸게 팝니다!)' 다른 사람이 입었던 '미국제' 헌 양복과 조끼, 신던 구두 등을 판다는 것. 광고엔 중고품들 사진도 곁들였고, 미국제라는 것을 강조하려고 성조기까지 그려 넣었다. 요즘 같으면 헐값에 처분해 버릴 '재활용품'에 지나지 않겠지만, 당시 광고란에 적힌 중고 양복은 가격도 만만치 않다. 양복 상의가 2원50전(오늘날 가치로 약 5만원), 바지는 2원30전(약 4만6000원), 조끼는 6원50전(약 13만원)…. 신문 광고 효과가 괜찮았는지 이 판매 업자는 같은 해 늦가을에 조선일보 2면에 2단통 크기로 더 크게 광고했다. 겨울용 중고 오버코트가 한 벌 4원50전(약 9만원)이다 (조선일보 1935년 11월 24일자).

중고 양복을 이런 가격에 판 것도 별나지만, 이를 일간지에 크게 광고한 것도 요즘엔 있기 어려운 일이다. 당시 모직 양복이란 일반적 의류라기보다, '모던'하게 살아가는 상류층을 상징하는 귀중품이었다. 웬만한 양복 한 벌 값은 오늘의 물가로 수백만원씩 하는 게 예사였다. '머리는 경기구(輕氣球)같이 높흔 곳으로 뜨지만, 현실은 몸둥이를 땅으로 잡아끄는' 세상에서 돈 없는 인텔리들은 헌 양복이라도 구해 입으려고 고물상을 기웃거렸다. 중고 양복이라도 사려면 손에 '돈 5원'(약 10만원)은 쥐고 가야 했다(1933년 10월 20일자 만추풍경〈1〉). 1920~1930년대 신문 사회면에 양복 절도 사건이 숱하게 보도되고,양복점을 습격한 강도 사건이 자주 눈에 띄는 것을 보아도 양복의 위상을 알 수 있다.

신문에까지 광고한 중고품에는 양복만 있는 게 아니다. 재봉틀도 마찬가지였다. 1934년 경성 낙원동의 어느 '미싱상점'은 최고급 재봉틀인 '씽거(Singer)'재봉틀 중고품을 판다고 광고했다. 가격을 보면, 발판을 밟아 돌리는 족답형(足踏型)은 110원(약 220만원), 손으로 돌리는 수회형(手廻型)은 85원(약 170만원)이다(1934년 2월 11일자 등). '특별 염가'라는 중고 재봉틀 값이 이 정도니, 신품 '씽거'미싱이 얼마나 비싼 물건이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중고마저 인기였던 양복과 재봉틀은 값이 비싸다는 것 외에도 이 땅에 밀려온 근대 서양 문화를 대표하는 물건이라는 공통점도 가졌다. '헌옷이라도 좋다'며 '양복쟁이'가 되고 싶어 했던 80년 전 사람들 모습은, 중고로라도 명품백을 가져보려는 오늘우리들 모습을 빼닮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