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연의 아픔도 그녀에겐 작품

남자 친구가 이메일로 이별을 통보했다. 예의 바른 마지막 문장이 여자에겐 더 아팠다. '잘 지내길 바랍니다(Prenez soin de vous)'. 여자는 여성 107명에게 문제의 '편지'를 보여주고 마지막 문장을 해석해달라 했다. 편지를 읽고 있는 여성들의 사진과 그들의 답변은 2007년 베니스 비엔날레 때 '잘 지내길 바랍니다'란 개인전으로 소개됐고 "현대미술의 새로운 세계를 열어줬다"며 호평받았다. 프랑스 '국민 작가' 소피 칼(Calle· 60) 얘기다.

"'비겁한 건가? 고상한 건가?' 탈무드 연구자는 이렇게 물었어요. 두 관점을 제시하는 탈무드의 서술 방식이죠. 동화 작가는 제 이별 이야기로 어린이 책을 썼고, 통신사 기자는 '예술가 소피 칼, 이별 통보 편지를 받다'라는 기사 한 줄을 보내오더군요."

소피 칼 첫 한국 개인전 '언제, 그리고 어디에서…'가 다음 달 20일까지 서울 도산대로 313아트프로젝트에서 열린다. 독학으로 사진을 공부한 칼은 1970년대부터 퍼포먼스·사진·영상 등을 결합한 개념미술로 주목받았다. 2004년 파리 퐁피두센터에서 생존 여성 작가로는 첫 회고전을 가졌고, 2010년엔 사진가 최고 영예인 하셀블라드상을 받았다. "내게 일어나는 모든 사건을 소재로 작업한다"는 게 그녀의 예술 철학. 폴 오스터 소설 '거대한 괴물'(1992)의 예술가 마리아는 소피 칼을 모델로 했다.

내밀한 사생활을 서정적이고 감각적으로 제시하는 게 칼의 특징이다. 전시에는 '잘 지내길 바랍니다' 연작 7점과 함께 2005~2012년 프로젝트 '언제, 그리고 어디에서'가 나왔다.

작품 중 특히 인상적인 것은 점괘에 따라 가톨릭 성모(聖母) 발현지 루르드를 여행하며 착안한 '루르드'<사진>. 유명한 기적의 발현지를 여행하며 작가는 사소한 것에서도 의미를 발견했다. 유방암에 걸린 어머니의 완치를 빌면서. 그러나 어머니는 2006년 숨졌다. 작가는 대리석에 루르드에서 기적의 효과를 봤다는 63개 병명을 푸른 글씨로, '유방암'만은 흰색으로 새겼다. "나는 결국 점괘, 종교 대신 '우연'을, 그리고 나 자신을 믿게 됐다." 작가는 자기 머리카락으로 글씨를 새겨 넣은 반지를 보여줬다. 어머니가 임종 직전 남긴 말, 'souci(걱정)'가 적혀 있었다. (02)3446-31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