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비행기에 엔진만 바꾼다고 초음속 비행기 되나

필자가 레인콤의 경영을 맡았을 때의 일이다. 한때 전 세계 MP3플레이어 시장을 선도했던 이 회사가 어려움을 겪게 된 원인에 대해서 많은 사람은 애플 아이팟의 등장 때문이라고 이야기했다. 내부 문제가 아닌 외부 환경을 원인으로 분석해 주는 의견이 한편으로 고맙기도 했다. 하지만 필자는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려면 회사 내부에서 원인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이팟의 선전으로 시장을 빼앗긴 것이 사실이긴 하지만, 과연 아이팟만 없었다면 레인콤의 지속적인 성장이 가능했을까?

예를 들어, 기존의 비행기에 초음속 엔진을 달면 한순간에 음속을 돌파할 수는 있다. 그러나 지속 가능한 비행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음속을 돌파하는 순간 비행기가 망가져 버리기 때문이다. 비행기가 초음속으로, 지속 가능한 비행을 하기 위해서는 엔진을 보강하는 것뿐 아니라 그 속도를 견딜 수 있는 동체를 개발하는 게 필요하고 심지어 창문 접합 부분까지 보강해야 한다. 이뿐 아니다. 초음속 상태를 견디고 비행기를 조종할 수 있도록 조종사의 역량도 키워야 한다. 단순히 비행기의 속도를 초음속으로 올리겠다는 목표만 세우고, 이를 위한 역량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비행기만 망가뜨리는 결과를 초래한다.

당시 레인콤의 상황도 이와 비슷했다. 내부 역량이 준비되지 않은 채로 초고속 성장을 시도한 것이 오히려 발목을 잡았다. 때로는 자기 자신이(정확히는, 역량이 갖춰지지 않은 자기 자신이) 자신의 지속 성장에 가장 큰 걸림돌이 될 수 있다.

◇모토롤라 실패는 재고관리 역량 없이 판매확장에 치중한 탓

현재 국내 글로벌 대기업들이 전 세계 시장을 대상으로 좋은 성과를 거두고 있는 것은 단지 전략이 훌륭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더 큰 비결은 훌륭한 전략과 더불어 그 전략을 실행하기 위한 역량을 차근차근 갖추어 온 데 있다.

삼성의 경우 품질과 디자인 경쟁력, 마케팅 역량을 높이면서 전 세계적인 공급망 관리(SCM·Supply Chain Management)를 최적화하여 운영해 온 것이 핵심적인 성공 요인이다. 삼성의 한 경영진은 "일본 업체들이 삼성에 대해 부러운 것 중 하나가 SCM이라고 이야기한다"면서 "전자제품 가격은 1년에 40~50%씩 떨어지는 게 다반사인데 SCM을 통해 재고(在庫)를 효과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것은 제조 기업의 핵심적인 경쟁력이다"라고 밝히기도 했다.

그간 삼성이 이루어온 성과는 이처럼 SCM 역량을 토대로 세계화 전략을 펼쳤기에 가능했던 것으로, 모토롤라(Motorola)의 사례와 대비된다. 과거 모토롤라는 상품 경쟁력과 마케팅 능력 등 여러 방면에서 뛰어난 역량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시장점유율 확대에만 주력하며 글로벌 공급망 관리에 대한 준비에 소홀했다. 300곳이 넘는 통신사들과 거래하다 보니 통신사별 재고가 10만 대만 되어도 전 세계 총 재고량이 3000만 대 이상이 되는 상황에 이르렀다. 이는 웬만한 업체의 연간 판매량에 육박하는 수치로, 시장 상황이 변동할 경우 큰 위험을 노출하고 있었다. 결국 2006년 들어 휴대폰 히트모델이었던 레이저(RAZR)모델이 경쟁사 제품의 등장 등으로 가격이 급락하고 잘 팔리지 않아 거래처들이 보유하고 있던 많은 물량의 상품은 고스란히 재고로 이어졌고 한순간에 어려움을 당했다. 새로운 시대엔 새로운 역량이 요구되는 법인데, 기존의 역량만 믿고 시장 변화에 대한 대비 없이 판매 확대 전략에 집중했다가 위기에 처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역량을 키우려는 준비 없이 단순히 성장을 위한 전략을 도모했다가는 설사 초반에 성공을 거둔다고 하더라도 이를 지속하기는 어려우며, 위험한 상황으로 치달을 수 있다.

◇성장 지속하려면 다양한 내부 역량 갖춰야

전략은 좋았으나 내재된 역량 부족으로 성공을 지속하지 못한 사례는 또 있다. 국내 한 IT업체의 컬러 마케팅이 그런 예이다. 하나의 제품을 여러 가지 색상으로 출시하는 컬러 마케팅은 심리적 욕망을 자극해 판매를 증진한다. 과거 IT업체가 컬러 마케팅으로 성공했던 MP3는, 한 색상의 제품을 구매한 고객들에게 색상별 제품 수집 욕구를 불러일으켜 패션 아이템으로 자리 잡았다. 다른 색상의 제품도 구매하고 싶은 심리적 욕구를 자극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그러나 다(多)품종소량생산에 대한 역량이 부족하고 생산 시스템이 유연하지 못해 이런 전략은 오래가지 못했다. 15가지로 늘어난 컬러 제품의 생산 라인 가운데 한 가지 색상의 자재나 생산에 문제가 발생하면 같이 출하되어야 하는 다른 모든 제품이 출고되지 못하고 창고에서 대기하는 등 비효율이 발생하기도 했다.

전략과 역량의 관계에서, 이 사례가 주는 시사점은 겉보기에 좋아 보이는 신상품 하나 개발했다고 해서 내부 역량 점검도 없이 판매 전략을 무시한채 상품판매부터 나서면 안 된다는 것, 그리고 하나의 전략을 성공적으로, 지속 가능하게 수행하기 위해서는 여러 역량을 동시에 갖춰야 한다는 사실이다.

◇차별화된 음식 메뉴도 조리법 외에 특산 재료 조달 역량이 필수

마찬가지로 시장세분화를 위한 전략도 그에 대한 차별화된 가치를 전달해 줄 수 있는 역량이 없다면 아무런 의미도 지니지 못한다.

필자가 자주 가는 한 '남도음식 전문점' 사장은 목포에서 나는 신선한 세발낙지를 매일 현지에서 공급받는다. 낙지가 제대로 올라오지 않으면 그날 장사를 하지 않을 정도다. '남도음식을 찾는 고객들이 증가해서 그 고객들을 목표로 개업했다'고 한다면, 메뉴의 차별만으로는 성공이 어려울 것이다. 차별화된 메뉴의 진정한 가치를 제대로 전달하기 위해서는 조리법뿐만 아니라 특산 재료를 조달하는 역량도 반드시 필요하다. 만약 이런 역량이 수반되지 않는다면, '남도음식 전문점'이라는 콘셉트로 다른 일반 음식점과의 차별화에 성공하여 초기에 반짝 손님을 끌 수는 있겠지만, 이후 지속 가능한 성공을 거두기는 어려울 것이다. 어떤 사업을 하든 성공하기 위해서는 우수한 전략 못지않게 그 전략을 실행하기 위한 역량의 점검과 개발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명우 한양대 특임교수·경영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