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퀴벌레보다 질긴 불법 보조금… 청와대가 나서면 박멸될까

과도한 휴대전화 보조금 경쟁으로 올 초 정부가 통신 3사에 내린 66일간의 영업정지 제재가 13일부로 끝났다. 3사 모두 14일부터는 정상 영업에 들어간다.

하지만 방송통신위원회는 14일 전체 회의를 열고 통신사에 또 한 번 중징계를 내릴 계획이다. 통신사들이 영업정지 기간 중 보조금을 자제하긴커녕 보란 듯이 보조금을 대거 투입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지난 1~2월 통신사를 옮긴 번호이동 건수는 일 평균 3만6525건으로 시장 과열 판단 기준인 2만4000건을 크게 웃돌았다. 영업정지를 받기 전인 작년 12월 평균 이동건수(3만7695건)와 큰 차이가 없다.

이 기간 동안 소비자들의 통신 시장에 대한 불신은 더 커졌다. 소비자 간 차별을 없앤다는 게 보조금 단속의 취지인데, '17만원 갤럭시S3' 같은 제품이 계속 나오면서 "그만큼 보조금을 못 받으면 손해 본다"는 인식이 퍼진 것이다. 사태를 해결하겠다고 나선 것이 오히려 더 악화시킨 셈이다.

결국 청와대까지 나섰다. 청와대 김행 대변인은 13일 브리핑에서 "이동전화 보조금의 과다 지급이 사회 문제화되고 있다"며 "제재 및 근절 방안을 추진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영업정지·과징금도 소용없는 이유

방통위 제재에도 불구하고 통신사들의 보조금 경쟁이 끊이지 않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먼저 3사에 돌아가며 비슷한 수준의 영업정지를 매겼기 때문이다. 일단 내가 한 대 맞고, 상대 한 대 때리는 식의 무의미한 제로섬 싸움이었다는 것이다. 한 회사가 영업정지로 손발이 묶이면, 나머지 두 회사가 보조금을 풀어 가입자를 뺏는 수순이 세 차례나 반복됐다.

66일간의 영업정지 기간 동안 LG유플러스는 가입자가 15만1452명 늘었다. 반면 SK텔레콤과 KT는 각각 9만7830, 5만3622명을 잃었다. 두 회사는 가입자를 찾겠다고 단단히 벼르고 있어, 영업정지 후에도 불법 보조금은 끊이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과징금 규모가 미미한 것도 원인이다. 방통위가 지난해 말 통신 3사에 매긴 과징금은 118억9000만원. 작년 3사가 쓴 마케팅비용(7조7950억원)의 0.15% 수준에 불과하다. 이 때문에 '보조금 마음껏 쓰고 차라리 과징금을 맞자'는 인식이 확산됐다. 방통위가 위치한 서울 광화문 인근의 통신사 대리점들도 보란 듯이 규정(27만원) 이상의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다.

정부가 비싼 스마트폰 가격은 외면한 채, 보조금 단속에만 집중하는 것도 문제다. 작년 공정위 조사 결과, 통신사·제조사가 담합해 휴대폰 가격을 부풀려놓고 선심 쓰듯 보조금으로 할인해준 행태가 적발됐다. 현재 해당 회사들은 "프리미엄 마케팅의 일환"이라면서 공정위 조사결과에 이의를 제기한 상태다. 하지만 부풀려진 휴대폰 가격을 정상화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를 해결하지 않고 보조금만 잡으면 오히려 소비자가 피해를 본다는 것이다.

휴대전화 제조사들이 올 들어 가격 거품을 뺀 휴대폰을 일부 내놓고 있기는 하다.

팬택은 올 초 스마트폰 '베가넘버6 풀HD'를 내놓으면서 가격을 84만9000원으로 책정했다. 시장에선 최고급 제품군인 만큼 100만원가량의 가격을 예상했었다. 삼성전자도 4개의 두뇌 칩을 갖춘 '갤럭시팝' 스마트폰을 79만원에 내놨다. LG전자는 60만원대 제품(옵티머스LTE3)을 내놨다.

◇국내 시장에 몰린 통신사, 손 놓은 정부

통신사들이 포화 상태인 국내 시장에만 매달리는 것도 문제다. 통신사들도 원칙적으로는 보조금 경쟁이 무의미하다는 데 공감하고 있다. 하지만 각 사는 매년 무리한 목표를 세워놓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 노력할 뿐, 누구 하나 선뜻 이를 해결하자고 나서는 곳은 없다. 한 통신사 관계자는 "연간 신규 고객은 20만~30만에 불과한데 통신 3사가 연초에 세우는 영업목표가 100만명을 뛰어넘다 보니 경쟁사 고객 뺏기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다른 통신사 관계자는 "이런 경쟁 상황에서는 누가 먼저 나서든지, 3사 최고경영자(CEO)가 한데 모여서 결단을 내리지 않는 이상 휴대전화 보조금은 바퀴벌레처럼 끝까지 살아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주무부처인 방통위의 무기력함도 문제다. 방통위는 영업정지 기간 중에도 통신사들이 보조금으로 시장을 과열시킬 때마다, 각 사의 마케팅 임원을 불러 구두 경고하는 선에만 그쳤다. 여야의 충돌로 미래창조과학부 신설 등 조직개편안이 표류하면서, 방통위의 업무가 사실상 멈춰 있는 것도 원인 중 하나다. 방통위 공무원들은 공공연히 "아침에 출근해서 사실상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있다"면서 "어떤 업무가 어느 부처로 넘어갈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일을 하는 게 오히려 잘못된 것"이라고 말했다.

◇보조금 문제, 어떻게 해결하나

전문가들은 불법 보조금의 근본 원인인 비싼 단말기 가격과 폐쇄적인 유통구조를 바꾸지 않으면 시장이 정상화되기 힘들다고 지적한다. 통신사를 통해 휴대전화를 구입하는 현재의 유통 구조를 바꿔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이상철 LG유플러스 부회장은 "가전제품을 사듯 휴대전화도 소비자가 대형 마트 등에서 직접 사서 원하는 통신사와 요금제를 결정하는 방식으로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방통위 관계자도 "보조금 문제 해결을 위해 유통 구조를 개선하는 것을 우선적으로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 소비자들이 휴대전화를 너무 빨리 바꾸는 것도 문제로 거론된다. 4~5년 써도 충분한 휴대전화기를 1~2년마다 유행처럼 자주 바꾸는 행태가 통신사들의 장삿속과 맞물려 과도한 보조금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 휴대전화 보조금

통신사나 제조사가 휴대전화 판매 및 가입자 유치를 위해 일선 판매점에 지급하는 비용. 소비자는 보조금 액수만큼 할인된 가격에 휴대전화를 살 수 있다. 법적 상한선은 한 대당 27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