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人] "장래 희망이 자선사업이었지… 죽 쒀서 남 주는 게 내 운명"

"남들에게 뭘 퍼줘야 신이 나요. 장래 희망이 '자선사업'이었는데, 이것도 운명인가 봐요(웃음)."

18일, 서울 노원구 공릉2동 주민센터 앞. '죽 쒀서 남 주는 사람' 김미자(59)씨가 말했다. 김씨는 지난해 5월부터 중랑구 신내동 서울의료원과 주민센터 앞에서 '꿈꾸는 호박죽'이라는 플래카드를 걸고 호박죽과 팥죽을 판다.

오전 8시부터 오후 9시까지 한 그릇에 2000원, 세 그릇에 5000원인 호박죽을 팔아 버는 돈은 하루 5만원에서 7만원 정도. 김씨는 아파트 경비 일을 하는 남편 최지훈(66)씨와 함께 유니세프, 월드비전 등 8개 단체를 통해 아이 7~8명을 후원하고, 한 달에 한 번 독거노인들을 위해 호박죽을 보낸다.

김씨가 죽 장사에 나선 건 후원금 때문이었다. "경기가 어려워지니 네 식구 생활비에서 한 달에 후원금 40여만원 내기가 부담스러워지더라고요. 그래서 내가 가장 잘 만드는 호박죽을 팔아 후원금에 보태기로 했지요."

장사가 쉬운 일은 아니었다. 두 달간은 수익을 제대로 내지도 못했다. 하지만 "내가 나와서 버는 몇 만원이 아프리카에 사는 아이들 인생을 바꿀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버텼다.

기부에 열심을 내는 것은 치약, 비누 같은 생필품을 지원받아 생활해야 할 만큼 어려웠던 시절 때문이다. 20년 전 남편 최씨가 보증을 서줬던 지인의 사업이 망해 빚 8000만원을 떠안게 된 것이다. "당시엔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아들 책가방 사줄 돈도 없을 만큼 힘들었다"고 했다.

조금씩 생활이 나아지자 김씨는 2001년부터 캄보디아, 네팔, 잠비아 아이들에게 기부하기 시작했다. 2003년엔 남편 최씨의 보험 만기로 지급된 금액 350만원을 기부하고, 2004년엔 시어머니가 돌아가시면서 남은 치료비 1000만원을 보육원에 기부했다. "뭐든 자꾸만 퍼주고 싶어져서 손에 돈이 안 붙는다는 소리도 듣지만, 적은 돈으로 많은 사람을 먹일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