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가난, 그 뒤 희망을 찍다… 50년 동안

다큐멘터리 사진가 홍순태(79·사진)의 렌즈는 50여년간 '서울'을 바라봤다. 인구 1000만명의 대도시 서울에서 그는 요즘 보기 드문 서울 토박이. 중림동에서 태어나, 숭인동에 신접살림을 차렸고, 종암동 등을 거쳐, 상일동에 살고 있다. "서울의 변화상을, 나는 생생하게 목격해 왔다. 그것이 내가 죽 '서울'을 찍어온 이유다."

홍순태 사진전 '오늘도 서울을 걷는다'가 서울 방이동 한미사진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1960~1970년대 서울 사진 100여점이 걸렸다. 한 푼이라도 벌어보려 신문팔이로 나선 노인과 소년들, 공중화장실 앞에 길게 줄을 선 달동네 사람들, 눈이 펑펑 내리는 날 물지게를 나르는 아이…. 산업화와 전근대(前近代)의 경계에 놓인 그의 사진 속 서울은 꼬질꼬질하고 구차하다. 홍순태는 주로 '서울의 달동네'로 불렸던 창신동, 금호동, 만리동과 6·25 피란민들이 움막 치고 살았던 청계천변을 찍었다. "중산층의 삶에선 딱히 소재를 찾지 못했다. 가난하나 인정 많은 사람들, 삶에 대한 긍정과 의지를 작품에 담고자 했다." 하루 벌이가 흡족해 활짝 웃음짓는 영등포 시장 상인, 거리에서 담소를 나누는 퇴계로 노동자…. 그의 작품에서 '절망'보다는 '희망'이, '쪼들림'보다는 '여유'가 묻어나는 건 그 때문이다.

정작 홍순태 자신은 가난과는 거리가 멀었다. 아버지는 의류 제조업체 사장. 판잣집 빼곡했던 중림동에 딱 한 채 있었던 고래등 같은 기와집이 그의 집이었다. "동네 아이들과 어울리지 말고 공부나 열심히 하라"는 부친의 엄명에 늘 혼자였던 소년은 집에 있던 독일제 카메라로 사진을 찍으며 외로움을 달랬다.

평탄했던 그의 삶에 시련이 찾아든 것은 서울중학교 4학년 때인 1950년. 학도병으로 차출돼 참전한 6·25는 그에게 삶과 죽음, '나 이외 다른 곳'에 대한 관심을 일깨워줬다. 천행(天幸)으로 무사 제대해 서울 상대를 졸업했더니, 이번엔 아버지 사업이 망했다. 호구지책으로 양정고 상업 교사로 취직했고, 사진 좋아하는 교장을 만나 동호회 활동을 하게 된 게 그를 사진가로 이끌었다.

리얼리즘 사진의 거장 임응식(1912~2001)을 사사했고, 신구대 사진과 교수, 86 아시안게임 및 88 서울올림픽 공식기록 사진가 등으로 활동했다. 소작농의 아들로 태어난 동년배 사진가 최민식(1928~2013)이 빈곤을 직시한 것과는 달리 홍순태가 거리를 두고 '가난'을 바라본 것은 이러한 성장 배경 때문이다.

"어릴 때부터 나는 항상 우리 집 밖의 사람들, 나를 '땅주인네'라 부르는 그들에 대해 연민과 호기심을 함께 가져왔다. 그들의 '가난'을 내 '작품'을 위해 이용하는 게 아닌가 거리낌이 들 때마다 슬럼가 현실을 고발했던 미국 사진가 J. A. 리스를 떠올렸다. 그래도 정작 우리 동네 사람들을 찍을 용기는 차마 나지 않더라."

5월 19일까지. 관람료 성인 6000원, 초·중·고생 5000원. (02)418-13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