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야마 단지, 65세 이상이 절반 年50명 사망, 20여명 고독사… 74세 노인 "난 비교적 젊은층" -"일본의 우울한 미래 상징" 학교·병원·주변 상점 문닫아 "보행기 끌며 30분 걸려 쇼핑"
차학봉 특파원
지난 15일 오전 8시 30분, 일본 도쿄 신주쿠(新宿)구 신오쿠보(新大久保)역 주변은 출근길 인파로 붐볐다. 행인들이 서로 어깨를 부딪힐 정도였다. 하지만 역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는 아파트 단지인 '도야마(戶山) 단지'로 들어서자 갑자기 주변이 한산해졌다. 자전거 보관소엔 녹슨 자전거들이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고 주차장도 한산했다. 어린이 놀이터에는 산책 나온 노인들이 벤치에 앉아 쉬고 있었다.
2321가구가 사는 도야마 단지는 이른바 '도심 한계부락(限界部落)'이다. 고령자 비율이 늘어나 지역 커뮤니티 유지가 불가능한 지역이란 뜻이다. 이곳 주민 중 65세 이상 비율(고령화율)은 일본 평균인 23.3%의 2배 이상인 50%에 달한다. 도야마 단지의 현실이 곧 일본의 우울한 미래를 상징한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한 단지에서 한 해 20여명 고독사
이 단지는 1990년대 기존 아파트를 헐어내고 1인 가구 중심의 고층 아파트로 재건축한 공공 임대 아파트다. 도쿄도청이 소득이 적고 나이가 많은 사람들에게 입주 우선권을 주면서 노인 비중이 급격히 높아졌다. 주민 혼조 아리요시(本�b有由·74)씨는 "나는 단지 내에서 비교적 젊은 층에 속한다"면서 "65세 이상인 거주자의 절반 정도는 홀로 사는 노인이라 고독사(孤獨死)가 빈발한다"고 말했다.
이 단지에선 연간 약 50명이 사망한다. 이 중 절반 정도는 죽은 지 며칠 지나서 발견되는 고독사다. 혼조씨는 "10년 전만 해도 주민들이 자치회를 결성해 마을 축제를 여는 등 사람 사는 냄새가 났지만 이젠 주민들 나이가 너무 많아져서 몇 년 전 자치회를 해산했다"고 말했다.
대도시 일부 지역에서 인구가 줄고 고령자 비율이 크게 증가하는 도심 한계부락(限界部落)이 일본의 우울한 미래를 상징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지난 16일 기자가 찾은 도쿄 이타바시(板橋区)구 다카시마다이라 아파트 단지에서 노인들이 벤치에 앉아 있다. /차학봉 특파원
◇도심에서도 생필품 난민 급증
지난 16일 방문한 1만 가구 규모의 도쿄 이타바시(板橋�S)구 다카시마다이라(高島平) 아파트 단지도 마찬가지다. 1980년대엔 3만명이 넘게 살았지만 최근엔 거주자가 1만8000여명까지 줄었다. 고령화율은 43%에 달한다.
단지 내 중앙상가는 생필품을 사려는 사람이 꽤 많았다. 단지 곳곳에 흩어져 있던 점포들이 대부분 문을 닫아 모두 이곳으로 몰려드는 것이다. 상가를 찾은 사람 10명 중 7~8명은 허리가 굽고 머리가 하얗게 센 노년층이었다. 이들은 한결같이 배낭을 메거나 보행 보조기 겸용 쇼핑카트를 밀고 있었다. 나카무라 쇼지(78)씨는 "상가까지 오는 데만 20~30분이 걸려 생필품을 사는 일도 어렵다"고 말했다. 일본에서는 주변 점포가 폐쇄돼 생필품 구매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을 '생필품 난민(難民)'이라고 부른다. 전국적으로 약 600만명이 이런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추산된다.
특정 지역에 고령화가 급속도로 진행되면 학교와 소아과, 상점들이 문을 닫는다. 편의 시설이 부족해지면 젊은 층 인구가 빠져나가는 악순환이 되풀이된다. 극단적인 사례가 후쿠오카현 기타큐슈(北九州)의 고라쿠쵸(後樂町) 단지다. 9개 동 220가구 중 90%가 고령자다. 평균연령은 80세다. 기타큐슈(北九州)시립대 나라하라 신지(楢原眞二) 교수는 "고령자 비중이 높은 지역은 주민 모임이 유지되지 않는 등 인간관계가 옅어지면서 고독사가 빈발한다"면서 "세대 간 균형을 이룰 수 있는 정책이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한계부락(限界部落)
65세 이상 실버 세대의 비중이 주민의 50% 이상인 농촌 마을을 지칭한다. 노인들의 비중이 너무 높아 사회 공동체 유지가 곤란하다는 의미이다. 최근 일본에서는 대도시에도 고령자가 집중적으로 몰려 사는 ‘한계부락’이 등장해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