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배낭이 어쩌면 나보다 더 오래 살 거예요"

"그는 어디에 끼워 맞출 수 있는 종류의 인간이 아닙니다. 가만히 서 있질 못하지요. 퍼붓는 빗속을 걷고, 광야를 떠돌며, 산등성이를 더듬습니다. 몸속에 집시의 피가 흐르고 있는 게 분명합니다."

미국인 최초로 에베레스트를 정복한 전설의 산악인 루 휘태커가 스킵 요웰(Yowell·66)을 두고 한 말이다. 스킵 요웰은 세계 최대 백팩(배낭)업체인 '잔스포츠(JanSport)'를 창립한 인물. 그가 지난주 서울에 왔다. 2011년 잔스포츠에서 은퇴한 요웰은 세계 곳곳을 다니며 잔스포츠의 성공기를 토대로 리더십 강의를 한다.

가죽점퍼를 입은 그는 자신이 디자인해 '스킵 요웰 컬렉션'이라 명명한 가죽 백팩을 매고 있었다. "이 가방이 어쩌면 나보다 더 오래 살 것"이라고 해서 웃음이 터졌다. "시골과 도시에 모두 어울리게 실용적으로 만든 가방입니다. 겉면을 가죽으로 덧대 고전적인 느낌을 살리면서도 안쪽은 매우 실용적으로 디자인했어요. 노트북부터 여권, 비행기표 등 크고 작은 주머니가 여럿인 데다, 방수가 되니까 물건들이 모두 안전하죠." 디자인할 때 가장 중시하는 게 무엇이냐는 질문에 요웰은 "소비자들이 원하는 기능"이라고 잘라 말했다. 잔스포츠가 처음 창안한 '지퍼 달린 배낭'이 대표적이다. "이전엔 모두 덮개형 배낭이다 보니 비가 오면 가방 속 책들이 젖었습니다. 책이 젖지 않도록 하는 방법을 연구하다가 지퍼를 달았지요."

잔스포츠는 비틀스를 좋아했던 3명의 히피가 시작했다. 스킵 요웰과 그의 사촌인 머레이 플레츠, 그리고 머레이의 여자친구였던 잔 루이스. "1967년이었죠. 마침 시애틀에 사는 삼촌 가게에 방이 하나 있어서 그곳에서 배낭 같은 등산 장비를 만들기로 했습니다. 문제는 프레임에 천을 입혀 바느질할 사람이 필요하다는 거였는데 머레이가 사귀던 잔이 재봉틀을 가지고 있는 데다 실력도 뛰어났죠. 그래서 머레이가 잔에게 부탁했어요. '나와 결혼해준다면 당신의 이름을 따서 회사 이름을 짓겠다'고. 잔스포츠는 그렇게 태어났습니다(웃음)."

세계적인 아웃도어 업체로 46년째 명성을 이어오고 있는 잔스포츠의 비결은 독특한 마케팅 전략에 기반한다. "턱시도를 입어야 할 것 같은 격식 있는 곳에 우리 배낭을 광고했지요. 부자들의 대저택이 모여 있는 마을에 광고판을 걸기도 하고, 모델로 북미 원주민을 등장시키기도 하고요. 그야말로 아방가르드했지요." 그 '쿨(cool)'한 마케팅 전략은 지금도 여전하다. '배낭에 잠시 휴가를 주라'는 뜻의 '백팩캠프'가 대표적이다. "지퍼가 고장 나거나 해서 수선이 필요할 때 소비자들이 잔스포츠에 배낭을 보내오면 수선하는 동안 고객들에게 엽서를 띄웁니다. '당신의 가방은 지금 잘 쉬고 있으니 안심하십시오'라고. 젊은 마케터들의 아이디어였는데, 고객과의 재미있는 소통 방식의 하나로 인기를 끌었지요."

캔자스가 고향인 요웰은 어릴 때부터 등산 마니아였다. 농부였던 부모는 자식들이 대자연 속에서 자라길 원해서 등산, 수영, 낚시, 캠핑, 하이킹, 스키까지 두루 즐기게 했다. "덕분에 일찌감치 자유로운 영혼이 됐지요(웃음). 평평하기만 한 캔자스를 벗어나 여행도 많이 하고 세계 각국의 산을 올랐고요. 방랑을 통해 타문화와 역사,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인생을 배웠습니다. 루 휘태커라는 인생의 스승도 산에서 만났지요. 극한 날씨에서 살아남는 법, 크레바스에서 빠져나오는 법을 그가 가르쳐주었습니다."

경영일선에서 은퇴한 이유는 "자연과 나의 멘토들에게 배운 인생의 지혜를 젊은이들에게 나눠주고 싶어서"였다. "좋아하는 일을 하고, 하는 일을 좋아하세요. 어차피 인생은 모험이에요. 알려지지 않은 길을 걸어가는 게 인생이죠.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하루를 인생의 보너스라고 여기고 매 순간을 즐기며 사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