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때문에 영화 본다" 10년새 18%→3%

지난달 21일 개봉한 액션 영화 '라스트 스탠드'는 관객 6만6698명을 동원하고서 한 달도 안 돼 극장에서 내려갔다. 이 영화의 주연은 '터미네이터' 시리즈로 유명한 아널드 슈워제네거이고, '악마를 보았다'와 '좋은놈, 나쁜놈, 이상한놈'의 김지운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 스타 감독과 스타 배우의 조합이지만 흥행에는 전혀 도움이 안 된 것이다.

배우와 감독들의 티켓 파워가 약해지고 있다. 특히 배우들의 경우엔 과거에 비해 영향력이 현저히 떨어진 것으로 설문조사 결과 나타났다.

◇"배우 보고 영화 선택" 3.4%

영화 예매 사이트 맥스무비는 지난달 26일부터 6일까지 회원 2754명을 대상으로 '영화 선택할 때 가장 고려하는 것'을 물었다. '줄거리'가 74.2%로 압도적 1위였다. 10년 전인 2003년 같은 설문 조사에서 같은 대답은 39.6％였다. 반면 '배우'를 택한 응답자는 2003년 17.9%였지만 10년 만에 3.4%로 뚝 떨어졌다. '감독을 보고 영화를 택한다'는 대답은 2003년 2.5%, 올해 2.1%로 두 번 다 꼴찌였다.

10년간의 변화를 가장 잘 드러내는 것이 '강제규 감독+장동건 주연'의 '태극기 휘날리며'(2004)가 1000만 관객을 넘은 것과 '마이 웨이'(2011)가 참패한 것이다. 조사를 진행한 맥스무비 김형호 실장은 "시장이 커지고 영화가 많아지면서 스타 배우나 감독보다는 선호하는 줄거리나 장르에 따라 영화를 선택하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으며 관객들의 취향이 뚜렷해졌다는 증거"라고 했다.

이 설문 결과는 요즘 영화의 흥행 추이와 맞아떨어진다. 한 주 간격을 두고 개봉한 '7번방의 선물'(개봉 1월 23일)과 '베를린'(1월 30일), '남쪽으로 튀어'(2월 6일)가 그 예다. '베를린'은 하정우와 전지현 등 유명 배우들이 출연하고 맥주회사 광고모델을 할 만큼 인기 많은 류승완 감독이 연출했다. '남쪽으로 튀어'도 흥행 배우 김윤석과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으로 이름난 임순례 감독이 함께한 작품이다. 그러나 결과는 관객 1250만명을 넘게 동원한 '7번방의 선물'의 압승이었다. 배우 류승룡은 이 영화에서 첫 주연을 맡았고, 이환경 감독도 전작들의 잇따른 흥행 실패로 관객들에겐 전혀 알려지지 않은 상태였다.

◇대세는 '떼주연'

스타 배우들의 영화 출연료는 편당 5억~6억원이다. 여기에 러닝개런티(흥행 결과에 따라 지급받는 보수)까지 더하면 액수는 더 커진다. 이들이 '이름값'을 못하면 출연료 인하 압박이 생길 법도 하다. 한 영화 홍보회사 대표는 "유명 배우와 감독 이름을 내세우는 게 흥행으로 이어지진 않는다"며 "그러나 개봉 전까지 대중의 관심을 모으는 데는 여전히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베를린이 개봉 첫 주에 '7번방의 선물'을 앞지른 것도 이런 이유로 분석된다.

배우의 티켓 파워가 떨어지면서 비슷한 비중의 배우를 여러 명 등장시키는 멀티 캐스팅, 일명 '떼주연' 영화가 늘어나고 있다. 지난해 흥행한 '도둑들'과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주연 크레디트에 이름을 올린 배우만 각각 10명과 11명이다. 주연배우가 남녀 각 한 명씩밖에 없었던 멜로나 로맨틱 코미디에도 주연이 서너 명씩 나온다. 영화평론가 전찬일씨는 "배우들의 티켓 파워가 약해지면서 한두 명으로 영화의 성공을 보장할 수 없다. 또 관객들의 다양한 취향도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여러 명의 주연을 내세우는 경우가 늘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