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년 여정, 종착지는 에스파냐입니다"

만화가 이원복(66) 덕성여대 석좌교수의 교양 만화 시리즈 '먼 나라 이웃나라'(김영사)가 최종 목적지 에스파냐(스페인)에 도착했다. 1987년 '네덜란드' 편 단행본을 선보이며 시작된 '먼 나라…' 호의 세계여행은 프랑스 독일 스위스 등 유럽 6개국과 일본 미국 중국 등 모두 10개국을 거쳤다. 에스파냐는 11번째 나라.

"1981년 소년지 연재만화로 첫선을 보인 것부터 시작하면 33년 만의 완간입니다. 내 인생의 절반을 이 만화와 함께한 거지요." 그 사이 '먼 나라…'는 신화가 됐다. 누적 판매 부수 1700만부가 말해주듯, '대중을 위한 문화통역'이란 기치를 내걸고 시작된 '먼 나라…'는 세계 주요 국가의 역사와 문화 예술 등을 재미있게 풀어내며 인문 교양 만화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먼 나라…' 효과는 독특한 풍경도 만들어냈다. 이 교수는 "내 만화를 읽고 영국에 유학 간 초등학생이 헨리 8세와 앤 불린의 불화를 언급해 교사들을 놀라게 하고, 미국에 공부하러 간 학생이 미국 역대 대통령 이름을 줄줄 외웠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했다. '대한민국' 편이 나온 뒤론 종종 주한 대사관의 초청을 받는다. 그는 "대사 한 분에게 어떻게 나를 아느냐고 물었더니 '한국에 부임하라기에 대한민국 편 번역서를 읽었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대한민국 편은 영어·일어·중국어판이 나왔고 불어 번역이 진행 중이다.

이 교수가 보는 에스파냐는 문화·종교적 다양성을 포기한 대가를 혹독하게 치른 나라다. 에스파냐가 15~16세기 식민지를 개척하며 가장 먼저 강대국으로 부상했지만 이내 영국에 추월당하고 오랜 기간 유럽의 2류국가로 처졌다. 이 교수는 그 이유를 에스파냐 통일 과정에서 찾는다. "에스파냐는 1492년 아랍 지배 아래 있던 그라나다를 함락시키면서 아랍인 등 외국인을 이베리아 반도에서 완전히 몰아냈습니다. 이후 문화·종교의 다양성이 줄어들고 사회의 활력이 떨어지면서 국력이 시들고 말았습니다." 그는 "다문화 사회로 급속히 진입하고 있는 우리나라는 에스파냐 역사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는 생각을 담았다"고 말했다.

11번째 나라에서 시리즈를 끝낸 이유에 대해 그는 "나라를 하나씩 소개하는 '먼 나라…' 방식으로는 변화하는 세계를 제대로 담아낼 수 없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대신 "발칸·중동·동남아처럼 지역 단위, 또는 영연방인 캐나다 호주 등 여러 나라를 하나의 주제로 묶는 방식으로 그릴 것"이라며 "이 작업은 이미 선보인 '가로세로 세계사'를 통해 진행할 생각"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