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ly BIZ] [홍성태 교수의 '영화로 배우는 경영'] ① 빅 피쉬 재미없는 '진실'보다 재미있는 '허풍'이 낫다

기발한 상상력으로 유명한 영화감독 팀 버튼(Tim Burton)의 서울 전시회에 가보면 깜짝 놀랄 것이다. 관람객이 많아 티켓을 손에 쥐고도 한 시간 넘게 기다려야 겨우 입장할 수 있다. 그의 전시회는 3년 전 뉴욕에서 시작해 전 세계 주요 도시를 거쳐 서울에서 마지막으로 열리고 있다. 영화감독뿐 아니라 아티스트로서 팀 버튼을 만날 기회라고는 해도 한국에서 창의력에 대한 관심이 얼마나 큰지 실감할 수 있다.

그의 독창성이 처음부터 인정받았던 것은 아니다. 지금은 영화사마다 앞다투어 모셔가려는 감독이 되었지만, 초기에는 "어, 이거 너무 괴상하잖아"라며 배척받았다고 한다. 그는 그럴 때마다 "어려움을 많이 겪어야 나이 든 후에 삶이 풍요로워진다"는 생각을 위안으로 삼았다고 한다.

'유령수업' '가위손' '배트맨' '크리스마스의 악몽' '찰리와 초콜릿 공장' 같은 제목만 봐도 짐작할 수 있듯 그가 만든 영화는 장르도 내용도 매우 다양하다. 그는 감각적이고 초현실적인 영상미로 자신만의 독특한 스타일을 대중에게 각인해 왔는데 그중에서도 완숙의 경지에 오른 그의 재능을 가장 잘 보여준 영화가 '빅 피쉬(Big Fish)'다. 현실과 환상이 뒤섞여 한 편의 판타지처럼 느껴지는 이 영화는 팀 버튼이 아니면 만들 수 없는 영화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이 영화는 흔히 그렇듯 돌아가시고 나서야 뒤늦게 이해하게 되는 아버지의 삶과 생각을 동화 한 편처럼 그려냈다. 사람들이 일상에서 주고받는 소소한 '이야기'가 삶의 에너지의 원천이 될 수 있다는 메시지는 요즘 많은 기업에서 관심을 갖는 스토리텔링 마케팅에 적지 않은 시사점을 던진다.

진실만을 전달하려는 신문기자 윌리엄은 항상 허풍 섞인 말로 과장된 이야기를 지어내는 아버지가 불만이었다. 그래서 결혼 후 아버지를 멀리하기 위해 파리 특파원을 자청한다. 3년 후 그는 아버지의 병세가 위독하다는 연락을 받고 고향으로 돌아온다. 그때부터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까지 며칠 동안 그는 아버지와 이야기를 나눈다. 그러면서 그는 허구라고 믿었던 아버지의 이야기들이 조금 각색되긴 했지만 완전히 거짓은 아니었음을 알게 된다. 나아가 인생을 풍요롭게 만드는 것이 바로 이러한 꿈과 상상력이 빚어낸 이야기임을 깨닫고 차츰 아버지의 삶을 이해하게 된다.

한편 사진기자이자 감수성이 풍부한 며느리는 아들과 달리 시아버지의 이야기를 좋아한다. 시아버지는 자기의 병상을 지키는 며느리에게 "대부분의 사람은 곧이곧대로 이야기하지. 그러면 복잡하진 않겠지만 별 재미도 없잖니?"라고 말한다. 밋밋한 '정보'보다 '스토리'가 우리네 삶에 윤활유가 되고 감동을 준다는 말이겠다.

기업의 마케팅도 마찬가지 아닐까. '잘못된' 마케팅은 하고 싶은 말을 마구 외쳐댄다.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이야기가 훨씬 효과적인데 말이다. 세계적인 온라인 홍보 전문가 셸 이스라엘(Shel Israel)은 "제품을 팔려 하지 말고, 이야기를 하십시오(Tell, don't sell)"라고 말한다. 오늘날의 커뮤니케이션은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공감할 때 빛을 발한다. 온라인이나 모바일을 통해 이야기가 순식간에 퍼져 나가는 세상이기에 더욱 그렇다.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고 난 아들이 독백한다. "아버지는 자기 이야기를 하고 또 하다 보니 아버지 자신이 그 스토리가 되었죠. 그 이야기들은 아버지 덕에 생명을 얻게 되었고 그렇게 함으로써 아버지는 이야기와 함께 영원히 살게 된 거죠."

현대그룹에는 창업주 고 정주영 회장과 관련된 일화가 적지 않다. 그분이 돌아가신 지 오래지만 그 일화들은 아직도 광고의 소재로 쓰이고, 현대그룹의 정신을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 호감을 이끌어 내는 데 활용된다. 스토리야말로 뿌리 있는 브랜드를 만드는 데 필수불가결한 요소이다.

펩시콜라는 펩시 캔에 영화 '스타워즈'를 광고한 적이 있다. 당시 모든 펩시 캔에는 스타워즈의 영화 장면이 인쇄됐다. 이때 영화사가 펩시에 광고비를 낸 것일까. 아니다. 오히려 펩시가 '스타워즈'를 독점적으로 광고하는 특권에 대한 대가를 지불했다. 이제는 누가 더 좋은 스토리를 가지고 있느냐로 자웅을 겨루는 시대이다.

스토리는 마케팅 도구의 하나가 아니라 성공하려는 기업이 반드시 갖추어야 할 무기다. 패션 디자이너 코코 샤넬이 세상을 떠난 지 수십 년이 지났지만 영화로 만들어질 만큼 풍부한 이야깃거리 덕분에, 샤넬이란 회사는 샤넬이 죽은 후에도 더욱 번성하고 있다. '흥미로운 이야기가 없으면 명품 브랜드도 없다'는 말이 결코 지나친 표현이 아니다.